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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判狀(연판장)
2017년 07월 19일 (수)
송종복 sojobo@hanmail.net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連:연-맺다 判:판-판가름하다 狀:장-문서

 자기의 파워를 과시하기 위해 자기주장에 동조하는 자에게 사인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건의서, 청원서, 탄원서에 이용하다 거짓일 경우 물의를 빚는다.



  연판장은 여러 사람에게 자기의 의사를 주장하기 위해 내용을 그럴싸하게 지어 동지를 규합하는 행위이다. 이에는 2명 이상이 자신의 이름을 적고 도장이나 지장을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 피로써 서명을 대신하는 혈판장(血判狀)도 있다. 이런 연판장은 돌리는 주모자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환상(環狀) 또는 방사상(放射狀)으로 연서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사발통문(沙鉢通文)이라 한다.

 시초는 일본 바쿠후[幕府]시대에 지방 영주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영주를 탄핵하기 위해 서명을 곁들여 보낸 문서에서 유래됐다. 한국에서는 1960년 4ㆍ19혁명 이후 군부의 젊은 장교들이 연판장을 돌리려다 실패한 적이 있고, 1999년 2월 ‘심재륜 고검장 파동’과 검찰의 법조비리 수사발표에 맞춰 일선 검사들이 연판장을 돌려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다. 또 1961년 5ㆍ16군사정변의 주체세력이 되는 소장 장교들이 연판장을 작성해 당시 군부 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다.

 1998년 서울, 부산, 인천지검의 일부 검사들이 검찰 수뇌부에 반발해 연판장에 서명 작업에 나섬으로써 큰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또 같은 해, 서울 모 초등학교 학생들이 담임교사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꿔달라는 연판장을 돌려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일도 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한 것도 유생(유림)들이 일종의 연판장인 유통(儒通)을 돌렸기 때문이다.

 연판장을 돌리는 것은 제일 비겁하고, 저질스러운 방법이다. 차라리 고소나 고발을 해야지 뒷 꽁무니 속에서 슬며시 남을 음해하려는 술수가 담겨져 있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몰라도 가령 무엇을 망쳐먹는다니, 범죄행위를 한다느니, 사리사욕을 취한다든지 미리 겁을 주는 내용도 있다.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간사하기가 살쾡이’ 같고 ‘교활하기 여우’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이 가끔씩 그런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

 연판장은 간혹 조직 내에 파벌을 조장해 자기의 집단결속을 다지기 위한 방편으로 암적인 존재다. 이같이 못된 행위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못 배운 사람들이 종종 모방해 일을 떠벌이고 있다. 이런 ‘연판장’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이 판명되면 주모자는 자충수로 기름을 지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며, 또한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에 해당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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