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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映臺(월영대)
2017년 07월 26일 (수)
송종복 sojobo@hanmail.net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월영대는 최치원의 별야(別墅), 고운서당(孤雲影堂), 월영서원(月影書院), 고운대(孤雲臺)를 통칭한 말이다. <月影臺> 시에서 ‘달그림자’는 최치원의 고뇌와 방랑을 성찰한 표상이다. 



 월영대는 마산 해운동뿐만 아니라 전국에 5곳이나 월영대 유적이 있다. 즉, ①마산의 해운동, ②안동시 성곡동, ③문경시의 대야산 중턱, ④군산시 신시도 대각산 산중, ⑤서울 강북구 월계로에 각각 월영대란 석조물이 있다. 또한 그의 탄생지도 경주, 군산, 창원의 세 곳을 들먹이며 군산시는 내초도동 금돈시굴(金豚始窟)이 최치원 탄생설화와 관련 있다고 행사를 하고 있다. 또한 창원도 최치원의 부친이 문창군(文昌君)에 제수됐다고 탄생설을 주장하지만 경주 탄생이 정설이다.

 최치원은 12세에 唐에 유학 가서 18세에 외국인이 응시하는 빈공과(賓貢科)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그곳에서 소도시의 현위에 임용됐으나 다시 회남절도사 고변의 종사관으로 있으면서 <토황소격문>을 썼다. 29세에 귀국해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을 썼는데 그중 몇 권은 현존한다. 그는 신라의 골품제 때문에 5두품(현: 장관급) 이상 승진 못 하는 정치사회를 비판하다가 조정으로부터 반신라적 인물로 낙인찍혔다. 이로써 그는 방랑 생활을 하다가 해인사에서 일생을 마감했다.

 그의 시호는 문창후(文昌侯)라 하는데, 문창이란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 별을 문창성(文昌星)이라 한다. 그가 죽자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 추앙되고 향교의 문묘에도 향사한다. 방랑생활 때 남긴 유적으로 ①마산 해운동의 월영대, ②하동군 쌍계사의 진감선사비, ③보령군 성주사의 낭혜화상백월보탑비, ④경주시 초월산 대승복사비명, ⑤함양군 학사루와 상림숲, ⑥군산시 옥구읍의 자천대, ⑦서산시 읍내동의 서광사, ⑧문경시 가은읍의 지증대사적조탑비 등 전국에 300여 곳 이상으로 가장 많은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마산의 월영대는 최치원의 별야(別墅), 고운서당(孤雲影堂), 월영서원(月影書院), 고운대(孤雲臺)를 총칭한 말이다. <月影臺> 시에서 ‘달그림자’는 최치원의 고뇌와 방랑 중에 자신을 성찰한 표상이다. 그를 흠모한 고려의 정지상, 채홍철, 안축이며, 조선의 정이오, 이황, 송기양 등이 이곳을 순례하고 남겨놓은 명시들이 <동문선>, <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월영대>는 선생의 친필이며, 조선 숙종 17년 창원도호부사 최위(崔瑋)가 이 월영대를 정화하고 ‘천세 만세에 유린되지 말라’는 유허비를 세웠고, 1930년 최씨 문중에서 팔작지붕 건축물을 지어 비각을 안치했다.

 지금의 마산 월영대는 빌딩숲에 가려져서 흔적조차 잘 모르고 지내는 시민이 더 많다. 천 년 전의 대학자로 동국문종이라 칭했으며 8개 시ㆍ군에서 최치원의 흠모와 그를 기리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창원에서는 이런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으며 천년을 이어 온 희대의 대 석학을 기리는 문인의 대축제 행사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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