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31 (금)
알면 버거운 그 이름 ‘치매’
알면 버거운 그 이름 ‘치매’
  • 이숙남
  • 승인 2017.07.26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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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남 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어르신과의 첫 만남은 지난해 6월 무더운 여름날 이었다. 40여 년 전 사별해 혼자 2남 2녀를 힘들게 키우셨고, 생계를 위해 바쁘게 지내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독거의 외로움이 많이 느껴지는 한없이 작아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는 성향으로 집은 깨끗하게 정돈이 돼 어머니가 안 계신 흔적이 안 느껴질 정도의 깔끔함에 놀랐다가 어느 순간 강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불안감들에 흐트러짐이 없었고 행여나 하는 무서움 때문에 과도들이 방 여기저기에서 나올 때는 섬뜩함도 느껴져서 항상 경계가 됐다.

 혼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진 어르신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시고 항상 할 것 없다고 하시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그렇게 어르신과의 첫 만남 뒤 병원에 입원하고 계셔서 한 달 뒤에야 어르신 댁에서 두 번째의 만남이 있었고 그러고 세 번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장롱 안에 있던 현금 40만 원 가져갔지요?” 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밀려오는 서러움이 얼마나 북받치던지.

 수많은 어르신을 대하면서 치매에 대한 인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교육을 통한 인식이 돼 있었는데도 막상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이 되다 보니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어르신의 말이 비수로 꽂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더운 날씨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돼 감정이 폭발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색 한 번 안 하고 항상 자부심과 봉사 정신으로 임했던 시간들, 내 부모같이 안쓰러운 마음에 더 잘하려고 했던 것들을집에 와 하소연으로 쏟아내니 마음이 안정됐다.

 담당 복지사께서 다음날 찾아와 대상자와 보호자를 만나고 상황을 정리하고는 마무리됐지만 그 어르신을 다시 마주하고 방문하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다 보니 대상포진이 와서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가 됐다. 이틀의 병가를 내고 휴식을 취하면서 8년 동안이나 보훈섬김이로 일하면서 수없이 겪어온 대상자와의 시간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바로잡고 어르신께 다가가기 시작했다.

 퍼즐 맞추기, 큐빅 돌리기 및 색칠 놀이 등 여러 가지를 병행하면서 어르신과 함께하니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시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뿌듯함도 생겼다.

 이제는 어르신과의 인연은 과거의 추억으로 됐지만 보훈섬김이로써 전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내 앞에 닥치는 상황에는 당황하는 게 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치매’, 알면서도 막상은 버겁고 감당하기 힘든 그 이름. 내가 방문하는 어르신들 나아가 경남 서부보훈지청의 어르신들이 비껴갔으면 하는 병명인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늘어나는 치매 증상의 어르신들을 볼 때면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면서 조기에 발견하고 검사를 통해 약물복용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기에 오늘도 나는 전문가 보훈섬김이로 어르신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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