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의 몸은 세포 속 유전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의 연구로 이런 생각이 단편적인 것임이 알려졌다. 인체는 3개 계층에 둘러싸여 조절되는데, 유전자 주위 물질계(에피게놈, Epigenome), 몸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미생물계(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 우리 몸을 숙주로 번식하는 바이러스계(바이롬, Virome)가 그것이다.
흙 한 줌에는 약 1천억 개의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우리 몸에도 수조(兆) 개의 바이러스가 생존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의 입, 장내, 폐, 피부, 혈액 심지어 암세포에도 존재한다. 이 수는 우리 몸의 세포 수를 월등히 능가한다. 또한 바이러스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숙주가 있는 한 어디든 바이러스는 존재한다. 바이러스는 세균에서부터 나무까지 감염하지 않는 곳이 없다. 재채기 한 번에 평균 4만 개의 물방울이 흩어지는데, 이 속에는 약 2억 개의 바이러스가 포함된다. 이들은 놀랍게도 시속 300㎞의 속도로 공간에 흩어지는데, 바이러스를 흡입하면 세포 내에서 조용히 증식하다가 인체 면역시스템이 약해졌을 때 증상이 나타난다.
예로서 수두바이러스(Chicken pox) 등이 그러하다. 다행히 모든 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고, 해악을 끼치는 바이러스는 한정돼 있다.
반면 생명의 진화를 위해서는 바이러스가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진화에 필요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데 선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장내 바이러스의 종류에 대한 연구결과, 487개 우점 바이러스의 유전자 80%가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감염된 숙주에서 바이러스는 크게 3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먼저 숙주의 세포를 죽이는 경우가 있는데, 에볼라나 독감 바이러스 등이 그것이다. 이 경우, 자손 바이러스가 다시 증식할 수 있는 숙주가 줄어들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측면에서는 불리하다.
이와는 반대로 숙주의 세포들이 바이러스를 죽이기도 한다. 사람의 면역 시스템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숙주는 공존하면서 진화한다. 이런 바이러스들은 숙주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잘 모르고 있지만, 인류 진화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