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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한여름 밤의 꿈
  • 김병기
  • 승인 2017.07.31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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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112종합상황실 경위
 밤새 폭염으로 겨우 잠이 들었는데 뭔가 부서지는 소음에 일어났다. 옥상 문을 잠그지 않았기에 며칠 전 집에 들어온 낯선 이를 떠올리며 소리 들린 창문으로 3층 아래를 바라봤다. 길가에 내놓은 종이박스를 발로 밟아 리어카에 실으며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젊은 남자라 순간 당황했다. 보통 폐지를 수거하는 이들은 장애인 또는 나이든 분인데 젊은 분이 저리 열심히 살려고 하나 생각에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5분. 그래도 젊은 사람이 손전등에 리어카를 끄는 모습이 어색한 가운데 낮에 취급한 112신고 절도사건이 떠올랐다.

 지난 30일 새벽 3시 44분경 김해시 내동 집 앞에 놓아둔 가스레인지 2개와 스덴통 1개를 누군가 리어카에 싣고 갔다며 찾아달라는 신고였다. 고물수거를 하는 사람이 버리는 물건인 줄 알고 가져간 것으로 판단됐으나 고물상이 일요일이라 계속수사중인 사건이었다. 즉시 경찰서 종합상황실로 연락, 리어카 이동경로로 순찰차를 보내 용의자 확보와 피해품 확인을 요청했다. 휴대폰 소리에 잠이 깬 아내가 무슨 일인지 물어 “손전등에 리어카”라고 하자 살기가 어려운 것이 맞나보다며 잠을 청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손녀가 방학이라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묻는다. “할머니가 목욕을 가면 누구와 놀면 되냐” 해 자전거 타고 도서관에도 가고 연지공원에도 가보자며 길을 나섰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 대문에 들어서니 조금은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나오다 눈이 마주쳤다. 2층 세든 분 집 손님이라 보기에 뭔가 이상해 어떻게 온 분인지를 물었다. 남자는 서슴없이 “짜장면 배달을 위해 스티커를 붙이는데, 죄송합니다”며 집밖에 세워 둔 자전거를 탄다. 그런데 어디에도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아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오면 안 된다 경고를 했다.

 예년과 달리 일찍 시작된 폭염 탓에 전기요금을 걱정하다가 겨울철 난방비보다는 덜 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드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에다 영역싸움 야생고양이 울음소리 요란스럽다. 살기가 어렵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사람들은 역정을 낸다. 윗 지방에는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라는데 김해는 모진 이가 사나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리면 좋겠다며 푸념을 한다. 내 것이 중하면 남의 것도 중한 이치인 것을 어찌 내 것만 중하다 하는지 경계할 일이다.

 남의 집 앞에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면 주인에게 물어봐야 함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눈앞의 사익에 이끌려 범법자가 된다. 먹고 살기위한 생계형 범죄 뒤에 드리운 우리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잘난 이도 못난 사람도 우리의 이웃들이다. 잠시라도 밖에 물건을 둘 때는 이웃을 범법자로 만들지 않도록 사용하는 물건이면 표시를 한다든지 아예 남의 손을 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 명 도둑을 열 명이 지키지 못한다는 옛말을 기억해 대문 없는 집이라면 밧줄 경계선 설치도 고려해 볼 일이다. 새벽신고에 51세 리어카 절도범은 검거돼 수사 중이다. 남들이 잠 든 시간에 골목을 휘젓는 리어카는 당분간 없을 테지만 야생고양이 울음소리는 어쩌나. 아무래도 올해 한여름 밤의 꿈은 날아 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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