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20 (금)
포비아 증후군
포비아 증후군
  • 이주옥
  • 승인 2017.09.12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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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의 행복이다. 이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하지만 결국 많이 갖기 위해 정신없이 달리고 또 아우성치며 사는 게 인간이다. 궁극엔 정신적인 풍요로 인간의 삶은 행복으로 귀결되겠지만 물질의 풍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어쩌면 그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더 만족감을 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물질이고 거기에서 자잘하고 소소한 선택의 특권을 갖고 여유를 누린다. 하지만 요즘 그 선택 앞에서 망설이며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가장 민감하게 대두되는 게 먹거리다. 가장 먼저 인체에 해로운 피프로닐이라는 살충제가 검출된 계란 파동이다. 주부는 물론, 계란을 사용해야 하는 많은 식품 업체는 순식간에 경악하고 혼란을 겪었다. 정부에서는 매일 2~3개를 꾸준히 먹어도 아무 이상 없다는 발표를 했지만 국민들은 공포감에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않은 듯하다. 나부터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을 거둘 수가 없으니 말이다. 특히 계란만이 아닌 다른 식품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파급효과가 더 문제다.

 또한 여성에게 중요한 생필품인 생리대에도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첨가됐다 해서 또 한 번 공포감을 줬다. 가임 여성 대부분이 사용한 위생용품이야말로 더 영향력 있으며 공포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길게는 수십 년을 유해한 물질이 함유된 것을 몸에 부착 했다니 어쩌면 요즘 난임이나 불임여성이 많은 데에 한몫 했을 것이다. 일단 급선책으로 생산회사에서 환불을 약속했지만 무책임하고 가시적인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소시지나 햄 같은 가공육에도 발암물질이 함유됐다는 세계 보건기구의 발표가 있었다. 또 상한 패티를 사용한 햄버거를 먹고 신장이 손상되기도 한 일도 있었고 현대인들의 손에서 잠시도 뗄 수 없는 핸드폰 케이스에서도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무엇하나 안전한 것이 없으니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용해야 하는지 공포감만 확산되고 있다. 내 몸은 내가 지키는 것이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건강을 해치는 것들이 난무하니 무방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거리에 장난하는 것이 가장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할 정도로 식품은 중요하다. 관계 당국이나 생산자가 확고한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인간은 그 유해성에 포박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수명이 길어지고 삶의 질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사람들은 무엇보다 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갈수록 물질의 풍요를 부르짖고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종종 인간을 모독한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며 결국 인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일련의 사태로 세상은 불신이 난무하고 있는 듯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관계는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고 관계는 차갑게 단절되기 마련이다. 삶의 기초가 되는 먹거리가 오히려 인간의 건강을 해치고,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시도한 기술의 발달 또한 인간의 심신을 위협하고 있다. 물질과 휴머니즘이 공존하며 평화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 발전을 도모하지만 결국 공포만이 남는 세상이 될 것이다. 무분별하게 문명과 함께 춤춘 우리들에게 남은 건 치유가 어려운 극심한 포비아의 확산이다.

 매일 먹고 사용하는 것들이 나를 위협하는 유해물질들이라니 이젠 원시적인 의식주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에 왔나 보다. 하지만 편리함과 단순함과 빠름에 길든 인간에게 그 또한 쉽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애초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던가. 하지만 찌들대로 찌들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인간들을 자연이라고 무조건 품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이래저래 오염되고 그 속에서 나름의 부대낌을 겪은 지 오래다. 인간이 결국 돌아갈 곳은 자연일 터인데 우리는 겸손하지 못했고 정성스레 가꾸지도 않았다. 하지만 방만함과 오만의 끝에서 공포감만 품고 돌아온 탕아들에게 자연은 겸손을 가르치고 결국 우리는 자연의 품에서 공포감 해방의 기쁨을 만끽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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