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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시화전을 다녀오다
2017년 11월 27일 (월)
김은아 7618700@kndaily.com
   
▲ 김은아 가야문화예술인연합회 회장

 진눈깨비 같은 눈이 11월 하늘에서 흩날리고 있다. 제법 바람이 찬데도 할머니들의 얼굴은 함박꽃이 피었다. 모처럼 함께 하는 나들이에 한껏 들뜬 모습이 초등학교 학생들을 닮았다. 오늘은 밀양시청에 전시 중인 할머니들의 시화전을 관람하기로 한 날이다. 밀양시 평생학습 선포식 기간이었던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할머니들의 시화전이 밀양시청에서 함께 하고 있다. 2주 전, 할머니들의 작품이 시청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말씀드렸을 때부터 기대와 불안감으로 매일매일 잘한 일인가 물어보던 할머니들이 이제 그 작품을 보기 위해 나섰다.

 시청 로비에 전시된 작품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할머니들의 얼굴에서 삶의 흔적들을 함께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글을 몰라 서러웠던 이야기, 시어머니 시집살이 견디며 살아왔던 이야기, 자식 굶기지 않기 위해 남의 고구마밭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한평생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담히 담겨 있다.


 지난 4월 생활문화진흥원 지역 문화 전문인력으로 밀양시 백산마을 생활문화센터에 출근하게 되면서 할머니들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낯선 이의 방문을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한글 수업 시간에 문을 열어드리고 한글 선생님이 오시지 전까지 안부를 여쭙는 나를 경계하셨다. 이웃 동네 누구네 딸이라고 소개하자 다행히 한 분이 어머니를 알고 계셨다. 내 고향이 그곳에서 가까웠다.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필을 잡고 한글을 배운지 두 해 째,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던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몰래 건네줬던 삶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시가 되자 할머니들에게 꿈이 생겨났다.

 시화전을 관람하던 할머니들을 시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처음으로 시장실을 방문하는 할머니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시장실에서 동네 어르신을 뵙게 되니 더 반갑다며 한 분, 한 분 손을 꼭 잡아주시는 시장님의 따뜻함이 할머니들에게도 전해졌는지 다소 굳었던 표정들이 풀리고 시장실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졌다. 생각보다 소박한 시장실에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에 마음이 누그러진 할머니들은 소탈하고 편안한 시장님과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시장님의 어릴 적을 기억하는 할머니들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듯 연신 시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님과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할머니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시청 인근 식당에 들러 추위를 녹여주는 순두부를 먹었다. 더 맛있는 것을 먹지 않고 집에서도 먹는 것을 먹느냐고 하실 때 죄송스럽기도 했는데 그것이 할머니들을 위한 말씀이 아니었음을 식당을 나오면서 알았다. 식당으로 먼저 들어가라 재촉하며 늦게 들어오신 할머니 한 분이 식사도 하기 전에 밥값을 계산하셨다. 딸 같이, 아들 같이 1년간 늙은이들 비위 맞춰가며 한글 공부를 가르치고, 그림도 가르치느라 고생했다며 더 맛있는 걸 사 주고 싶었다며 손을 꼭 잡아주시는데 거친 그 손이 너무 따뜻했다. 할머니들과의 이 따뜻한 만남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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