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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동지’에 관한 고찰
‘적과 동지’에 관한 고찰
  • 김명일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8.01.2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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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일 편집국 부국장ㆍ정치부 데스크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에게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오직 국익뿐이다(America has no permanent friends or enemies, only interest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국제 관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키신저는 냉전 시대 적대국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 중국과 외교의 길을 열었다. 그는 중동 평화에도 힘썼다. 1973년에는 북베트남과 접촉,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국가와 정당,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으로 수십 년간 적대국으로 지내다가도 세계정세가 변하고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사안이 발생하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현실이다. 기업과 기업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삼성과 애플은 해마다 ‘갤럭시’와 ‘아이폰’ 신작을 내놓으며 불꽃 튀는 마케팅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애플은 많은 부품을 삼성에서 납품받고, 삼성 역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애플에 의존하는 공생관계다.

 미국과 일본이 적에서 동지로 변한 경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들이 격침되고 미군 등 2천여 명이 사망했다. 이후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 보복으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우방이 됐다. 양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고,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정당 간에도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 최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을 선언했다. 국민의당은 지난 2016년 중도 개혁을 표방하며 더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 등이 창당했다. 바른정당은 유승민 대표 등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보수를 자처하며 지난해 창당했다. 정강정책 등 정체성이 다른 두 정당은 대선이 지난지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일부 당원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해 정당의 몸집을 키워 보겠다는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정치인과 당원도 마찬가지다.

 일부 국회의원과 지방 자치단체장이 선거를 앞두고 당선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정당 지지율이 높은 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당을 옮기는 정치인은 제각각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이 추구해온 염원을 이루겠다는 신념으로 지난날 함께 했던 동지보다 새로운 목적을 위해 여태껏 몸담았던 당을 버리고, 당선에 유리한 정당으로 갈아탄다. 정당에 속해 있던 당원들도 평생 정당을 위해 한 몸을 바쳤지만, 당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당적을 옮긴다.

 전 세계 유일 분단국 남한과 북한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고위급이 만났다.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을 만들고, 개막식에서 한반도 기를 흔들며 함께 입장한다. 남북 단일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단일팀 출전과 동시 입장은 국가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지난 경우와 다르다.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미국은 대북 경제 제재에 이어 무력 사용을 천명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만남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남북 고위급이 만난 것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은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영원한 적은 없다. 한국 전쟁으로 60년간 갈라져 있던 남한과 북한도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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