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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과거 회귀 아닌 전통 지키는 도시
2018년 05월 15일 (화)
이덕진 7618700@kndaily.com
   
▲ 이덕진 문화학박사

 우리는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세계의 도시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슬로시티(이탈리아어로는 치타슬로(Cittasiow)) 운동의 뿌리는 슬로푸드다. 대량생산ㆍ규격화ㆍ산업화ㆍ기계화를 통한 맛의 표준화와 미각의 동질화를 지양하고, 나라별ㆍ지역별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음식ㆍ식생활 문화를 계승ㆍ발전시킬 목적으로 지난 1986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식생활 운동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인 맥도날드가 로마 한복판에까지 파고들자 이탈리아 북부 도시 브라를 중심으로 패스트푸드에 맞서 우리 땅에서 난 재료로 공들여 만든 전통음식을 지키자는 운동으로,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식생활 운동을 시작으로, 몇 년 만에 국제적인 음식 및 와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슬로푸드를 패스트푸드와 대립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여기지만, 패스트푸드를 무조건적으로 부정ㆍ배척하는 의미가 아니라 글로벌리즘(Globalism: 세계통합주의) 개념에 로컬리즘(Localism: 지역밀착주의) 개념을 대치시킨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슬로푸드 개념은 각 지역의 고유한 환경을 고려한 독자적인 지역 가꾸기 운동이다. 즉 슬로시티는 슬로푸드의 철학을 삶과 문화 전반으로 넓힌 것으로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보호하면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려는 국제운동이다. ‘좋은 음식과 건강한 환경, 지속 가능한 개발, 공동체의 전통 위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도시’ 목표는 분명했지만, 이를 실제 어떻게 구체화시켜 도시의 삶에 접목할 것인지는 난제였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의 첫 사업은 차량 통행 제한이었다. 두오모 주변 도심은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심야와 새벽에 영업용만 허용)하고, 외부 차량의 도시 진입을 막는 대신 외곽에 대형주차장 3곳을 만들었다. 바위산 서남쪽 중턱의 주차장은 전망도 좋고 중세시대 수로를 따라 놓인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재미까지 선사해 푸니쿨라와 함께 도시의 명물이 됐다.


 현재 슬로시티 가입 지역은 세계 20개국 135곳으로 이탈리아 68곳을 비롯한 유럽이 121곳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입한 나라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전남 신안군 증도, 완도군 청산도, 장흥군 장흥면, 담양군 창평면과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충남 예산군 대흥ㆍ응봉면, 충북 제천과 경기 남양주, 경북 상주ㆍ청송, 강원 영월, 전주시에서 최근 김해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슬로시티 기준은 인구 5만 명 이하에 ‘유기농 진작’, ‘도시 환경과 역사 보전’, ‘대체 에너지개발’, ‘네온사인과 조명 제한’ 등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슬로시티는 무엇을 좀 바꿔서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요소를 갖춘 지역이 인증을 통해 좀 더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무조건 많은 도시가 슬로시티가 돼서는 안 된다. 슬로시티가 되면 관광객이 늘고 주변 지역보다 집값도 오르는 등 부수효과가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제 시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지느냐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시대의 중심시가지 재활성화를 위해서는 바이올로지(Biology)와 에콜로지(Ecology)가 필요하다. 바이올로지란 생태계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에콜로지란 경제활동을 포함한 각종 인간ㆍ기업 활동을 사회ㆍ자연환경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올로지는 일반적인 공간정비의 이념으로 인식돼 인간이 자연환경과 공존하기 위한 철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공업용지 재생이나 폐광 재생, 운하 재정비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프랑스 파리에서도 바스티유 광장 동쪽의 고가철도 부지를 ‘숲의 산책로’로 정비해 도시환경 속에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는 에콜로지와 관련된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느리게 살자니까 혹자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운동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느림은 과거는 다 내버리고 새것만 좇는 데 반대한다는 뜻이다. 첨단기술을 받아들이되 삶의 질을 중심에 놓고, 노인들의 삶의 지혜 같은 과거와 전통을 지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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