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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극단적 선택, 공직자 처신 되새겨야
서울시장 극단적 선택, 공직자 처신 되새겨야
  • 박재근 기자
  • 승인 2020.07.12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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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대기자ㆍ칼럼니스트

경천동지할 일이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이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일 전직 비서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다음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경남 출신인 그는 유서를 통해 고향 창녕군 장마면 선영, 부모님의 산소에 화장한 유해를 뿌려달라고 당부했다. 또 그는 지난 2002년 펴낸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에는 총 3통의 유언장이 실렸다.

자녀들과 부인, 지인들에게 보내는 내용이다. 그리고 "내 마지막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소. 내 영혼은 그들이 오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것이요. 내 부음조차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적어 놓았다. 극단적 선택과 달리 "그의 삶이 자신에게 엄격했고 맑은 분"이란 일각의 평판만큼 유언장에는 조용히 가는 길도 절여있건만 서울시가 박 시장의 장례를 5일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른다고 발표한 이후, 가족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쏟아지고 조문 반대 등 이견도 없지 않다. 서울시의 조치가 고인의 영면을 기리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성추행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적절한 조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고 고인에게는 되레 멍에일 수도 있다. 지지 여부를 떠나 서울특별시장(葬)은 `상식`의 문제이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아름다운 가게`를 통한 기부 등 시민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고 무상급식, 도시재생 등 생활밀착형 행정을 주도했고 최초로 서울시장 3선도 기록했다. 그렇다고 해도 사망 직전 성추행 혐의로 피소됐는데, 장례를 공식적인 서울시 기관장으로 치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코로나19로 교회소모임이 금지되고 진영논리를 고려해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50만 명으로 치닫는 현실은 고려했어야 했다. 지난 사례지만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정치인 중 상당수는 수사 대상이 된 후 겪게 되는 사회적 이목과 비판에 따른 심적 고충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고 죽음으로 사건의 진상은 함께 묻힌 공통점이 있다. 박 시장의 경우도 전직 비서는 `과거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했으나,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게 됐다.

극단적 선택 이후,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여직원의 신상털기 등 2차 피해를 벌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여성권익보호를 강조해온 박 시장의 성추행 피소는 아이러니하다. 더군다나 한 면만 부각하고 다른 쪽은 외면하는 편향성은 `피해자 중심주의`인 고인의 정신과는 먼 거리여서다.

때문에 전례 없이 행해져야 하는 것은 `서울특별시장(葬)`이 아니고 `진상파악`이 먼저다. 여권은 소속 단체장의 성추문 사건을 일과성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공직자의 엄중한 처신을 되새겨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11일 백련암을 들어서는데 선시를 새긴 시비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을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물과 바람같이 살다간 선승들의 삶이 죽비가 돼 십악(十惡)을 벗어놓고 가라면서 나의 등짝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고인의 극단적 선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사실이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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