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5:10 (일)
고독이라는 병
고독이라는 병
  • 이광수
  • 승인 2021.10.24 2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변덕 심한 날씨가 떠나기 싫은 여름을 몰아내고 찬 기운 감도는 가을 본래의 날씨로 되돌아왔다. 가을은 쓸쓸함이 묻어나는 우수의 계절이다. 공원벤치에 홀로 앉아 곱게 단풍 져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함께했던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 인간에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동고동락했던 사람이 내 곁은 떠나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서 쉬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도 미워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오늘처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안절부절 마음잡기가 힘들다. 우산을 펼쳐 들고 가을비에 흠뻑 젖은 창원천변 코스모스 꽃길을 거닐며 우울한 기분을 진정시킨다.

철학가 김형석 교수는 그의 에세이집 <고독이라는 병>에서 `한때 나는 자유로운 지성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자아를 상실한 군중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의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한 방법이 글을 쓰는 일이었다. 어떤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그 출발과 내용이었다`고 했다. 30대 초부터 지금까지 글을 써온 필자 역시 독서와 글쓰기를 빼고 나면 빈껍데기와 다름없다. 글쓰기는 내 존재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에 한시도 펜을 놓을 수는 없다. 백수를 누려온 김형석 교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곁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고독이라는 병`에 걸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고독감을 잊기 위해 글을 쓴 것이다. 필자 역시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은 물론 타자와 수많은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탈고가 되는 순간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벗어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1950년 출간한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에 등장하는 말이다. 대중사회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독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말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사회성과는 달리 속으로는 고립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불안한 감정을 내재하고 사는 `고독한 군중`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낭만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왜 우울증 환자가 많이 생기고 자살률이 높아질까.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지만 자신이 한 해 동안 목표한 결과를 이루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엔 태부족한 쭉정이 결실을 거두는 일이 다반사다. 기대한 꿈이 허망하게 무너지면 크게 실망하고 깊은 고독감에 빠져든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에세이집 <고독한 산보자의 꿈>에서 `고독과 몽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생각의 관점이 세상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독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고독한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었거나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공자는 3000여 명의 제자를 거느린 성인이었지만 `서로 아는 사람이 천하에 가득해도 내 마음을 능히 아는 사람은 몇 사람이 되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자신을 몰라주는 제후들을 은근히 원망하는 탄식이다.

몇 년 전 영국에서는 1인 가구 증가(50%)에 따라 고독한 사람의 자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고독담당장관을 임명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우리 국민 40%가 홀로가구라고 한다. 이제 한국도 고립과 고독을 극복할 종합처방전이 시급해졌다. 고독과 자살은 뗄 수 없는 함수관계가 있다. OECD 38개국 중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1위가 한국이다. 고독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의 사회복지정책도 경제적 궁핍만을 보완해주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26년이면 한국도 초고령사회(인구20% 노인)가 되기 때문이다.

혼자서 물을 마시는 남자는 여자와 가정이 필요한 사람이고,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남자에게 지친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고독이라는 병을 앓는 이에게 가장 효과 좋은 약은 사람의 따뜻한 정이다. 외톨이의 가슴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텅 빈 가슴의 고독감은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대에게 다가온 사랑을 애써 떠밀어내지 마라. 그건 삶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고독이라는 병을 치유하는 것도 세상 모든 아픔을 이겨내는 것도 결국 사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