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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바른 해석 금관성 파사석탑편
삼국유사의 바른 해석 금관성 파사석탑편
  • 경남매일
  • 승인 2021.11.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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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도명 스님

 진리(眞理)를 풀이하면 `참 이치`란 뜻인데 이때 참이란 경험하는 현실이고, 이치란 경험하는 현재를 이성과 논리로 언어화하고 문자화한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역사란 실제 일어난 사실과 경험을 말하며 역사학이란 이것을 문자화한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하고도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역사학에서도 학자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학자의 사관에 따라 역사 해석은 큰 차이를 보이며 종국에는 `있는 것을 없다`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가야불교도 가야사의 한 부분으로 엄연히 실존했고 전승되어 왔지만 사학계의 소극적 시각과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적잖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라는 문헌과 파사석탑이라는 실존하는 유물 그리고 20여 곳이 넘는 연기 사찰들에서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민담, 설화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있는 것을 없다 하겠는가. 가야불교 문제의 시작은 학자들의 이해 부족이 원인이므로 그것을 고찰해 보려 한다.

 이전에 가야불교를 부정하는 학계의 단골 메뉴였던 <삼국유사> 「파사석탑조」의 `상교(像敎)`에 대해선 이미 충분한 설명을 했으므로 제쳐 두고 또 하나의 오류인 해동말(海東末) 이란 구절을 언급하고자 한다. 「파사석탑조」에는 [然于時海東末 有創寺奉法之事 蓋像敎未至 而土人不信伏 故本紀無創寺之文~]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뜻은 "그러할 때 해동의 끄트머리에서는 절을 짓고 불법을 받들었으나, 아마도 상교가 들어오지 않아 이 지방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기에도 절을 세웠다는 글귀가 없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자는 [然于時海東 未有創寺奉法之事 ~]로 해석한다. 즉 `해동말(海東末)`에서 `말(末)`을 `미(未)`로 바꾸어 `해동(海東)` 뒤에 붙이지 않고 떼어다 `유창사(有創寺)` 앞에 붙여서 `미유창사(未有創寺)`로 한다. 이는 "그러할 때 해동에서는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들지 않았다. ~"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결과, 학계는 가야불교 도래시기를 허왕후가 도래한 48년이 아니라 왕후사가 창건된 452년으로 보아 400년 이상 늦춰 본다.

 그런데 위의 기사 원문이 `해동말(海東末)`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기사 제목이 `금관성 파사석탑`이므로 그 주체가 `해동의 끝`에 해당되는 김해 지역이지, `해동`이라는 한반도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토인(土人)도 김해 지역민을 가리키는 말이지, 해동 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금관성 파사석탑은 해동말 즉, 해동의 끝 지역인 `김해의 파사석탑`임이 명확하다.

 그리고 삼국유사 판본을 세밀하게 비교ㆍ검토하여 교정한 하정룡, 이근직의 <삼국유사 교감연구>(1997)에도 미(未)가 아니라 말(末)로 되어 있다.

 설령 말(末)을 미(未)로 해석해도 전체의 뜻은 별반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금관성 파사석탑`조의 기사에서 핵심 내용은 "불교의 상징물인 파사석탑을 허왕후가 금관국에 가져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를 한국불교 최초 도래로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문장의 주어인 `이 지방 사람들(土人)`은 생소한 외래 종교인 불교를 믿지 않았기에 스스로가 절을 짓지 않았다는 내용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일연스님이 독백처럼 말한 `아마도(蓋)`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뜻은 파사석탑으로 인해 불교가 소개됐지만 이때가 상법시대 이전이라 `아마도` 그들이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등의 일은 없지 않았겠느냐 하고 일연스님이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첫째, 서기 48년 허왕후가 파사석탑을 싣고 왔다. 둘째, 해동의 끝인 김해에 도래인들이 절을 짓고 불법을 받들었다. 셋째, 그러나 상법 시대가 도래하지 않아 토박이들은 토착신앙을 믿고 있어서 불교를 믿지 않았다. 넷째, 그러므로 이 지방 사람들이 지은 절은 없다는 것이다.

 학문의 본질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학계의 다수 학자가 <삼국유사>의 가야불교 관련 기사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 더구나 학계는 최근 야마토 `왜`가 한 번도 점령하지 못한 가야 땅인 남원에 `기문`국, 합천엔 `다라`국이라는 <일본서기>의 지명을 차용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그러나 왜가 가야를 점령한 역사적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이들 지명이 가야 땅에 왔는지 이상한 일이다. 국가의 강역 설정은 역사의 골간이 되는 민감한 주제인 만큼 학자들의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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