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23:15 (일)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 손 놓지 못했던 올곧은 교육 한길 41년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 손 놓지 못했던 올곧은 교육 한길 41년
  • 황원식 기자
  • 승인 2022.03.03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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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김재호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장
김재호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장이 학교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재호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장이 학교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20년 넘게 헌신해온 학교 문닫아
개교 후 1875명 배출… 입학생 급감
도내 최초 애니메이션 특성화고
사재 털어 학교 설립 시설 투자
대학진학 원하는 학생 전원 입학
"학생 포기 말아 달라" 호소에도
재정 어려움ㆍ지원 부족 안타까움
따뜻하고 존경받는 교육자로 기억

 끝내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앞둔 교장 선생님은 학생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던 도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20년 넘게 헌신해온 학교였다. 지난 1일부터 운영이 멈춘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의 닫힌 교문을 열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재호 교장이었다. 학교 내부에 들어섰지만 행정실 직원, 선생님들은 모두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 인터넷 통신마저 끊긴 상황에서 오직 그만이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교장실에서 처음 본 것은 그동안 학생들이 언론에 나왔던 기사를 모아 인쇄한 자료였다. 서울상명대학교에 수석 합격한 김수진 양, 홍익대학교에 입학성적우수 장학생으로 수석 합격한 임혜빈 양, 서울과학기술대 조형대학에 합격한 하수민 양, 경남교육청 임용시험에 수석합격한 문수경 양, 일본유학생으로서 동경다마미술대(아시아 최고수준 명문대) 합격한 오노데라나오미 양이 눈에 띄었다. 이외에도 일본교토조형예술대학교, 일본토우아대학교 등에 입학해 유학을 가거나 서울 중앙대학교, 동국대학교, 단국대학교 등 진학한 학생들도 많았다. 졸업한 학생 한 명 한 명 자랑스러워하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가 학교와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학교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경남 최초 예술계디자인 전문학교

 지난 2000년 `경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로 시작한 이 학교는 당시 경남전문학교 교학처장으로 근무하던 김재호 교장이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인재를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했다. 당시 컴퓨터디자인과 12학급에 대한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세워진 경남 도내 최초의 예술계디자인 전문학교였다.

 김재호 교장은 지난 2002년 학교 이사장에서 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총 108곳의 기업, 대학, 병원 등과 자매결연 또는 연계 교육 협약으로 학생들에게 더 나은 길을 열어줬다. 중국남경중의대학 무시험 추천입학제도를 성립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아울러 교육기자재를 활용해 학생들의 공동 교재 개발, 공익광고 제작, 애니메이션 제작 등 활동에도 앞장섰다. 도내 유일하게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SICAF)에 참가해 세계 만화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한 학교는 지난 2002년부터 경남도교육청 특수 분야 연수기관으로 지정받아 도내 유ㆍ초ㆍ중ㆍ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직무연수를 실시했다. 고등학교에서 특수분야 애니메이션 직무연수를 실시한 것은 전국에서 최초였다. 또한 15년간 중학생이 1000~1500명까지 참여했던 교육감배 창작캐릭터&미술창작 공모전을 실시한 학교로도 유명했다. 전국 규모의 각종 경연대회에 참가해 다양한 수상실적도 거뒀다. 지방기능경기대회에 17년 연속 출전, 메달 55개를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한때 480여 명의 학생들로 북적였던 교정은 지난 2015년 이후 학생 수가 급감해 2020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지난 2014년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간호과도 신설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했지만 저출산, 재정상 어려움, 신입생 모집 한계 등 이유로 2020학년도 신입생 모집 계획을 전면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개교 이래 배출한 졸업생은 모두 1875명이다.

지난 1일자로 운영이 중단된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 전경.
지난 1일자로 운영이 중단된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 전경.

- 눈물의 졸업식, 학생들에 대한 사랑

 지난달 11일 졸업생 5명을 배출한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 마지막 졸업식(19회)이 있었다. 언론에 소개된 `눈물의 졸업식`은 단순히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그동안 학생들과 교육에 헌신해온 김재호 교장이 흘린 `눈물`이 충분히 짐작되기에 더 적절한 제목이었을 것이다.

 이날 김재호 교장은 이번에 졸업한 학생 5명과, 졸업하지 못한 학생 1명의 이름을 일일이 대며 자세한 사연을 들려줬다. 졸업생들은 한 명 한 명 그의 진학 상담을 통해 전원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는 개교 이후 "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전원 다 대학을 보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번에 졸업하지 못한 학생은 일순간의 비행으로 자퇴서를 쓸 수밖에 없었지만, 내년에 다닐 학교까지 직접 알아보면서까지 졸업장을 주겠다고 약속해 부모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학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진심`이라고 느낀 것은 학생 480여 명이 재학했을 때에도 각각 이름과 가정환경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고 말했을 때였다. 기억나는 학생들 이야기가 너무 많아 이날도 3시간 가까이 이야기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어떤 때는 "친자식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특하고 예뻐 죽겠다는 듯 미소를 보이기도, 아픈 손가락을 이야기할 때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 마지막 졸업식에서 졸업생 5명과 김재호(뒷줄 왼쪽 네 번째) 교장 등 교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 마지막 졸업식에서 졸업생 5명과 김재호(뒷줄 왼쪽 네 번째) 교장 등 교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책임감 강하고, 매사에 성실한 교장 선생님

 김재호 교장이 학생들 교육에 열정을 보인 것은 매년 학생들과 함께 갔던 일본 문화체험 연수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당시 후쿠오카-도쿄-센다이 등을 경유하는 6박 7일간의 일정을 직접, 섬세하게 짰다. 일정에는 배, 지하철, 택시를 이용해 학생들 시선에서 배낭여행하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또한 일본 전자상가의 만화, 애니메이션 가게에 들러 선진화된 기술을 배우고,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시설과 고급 호텔에서의 추억도 만들어줬다.

 그가 매사에 성실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왔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도 있다. 그는 재임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추억 중 하나로 지난 2009년 2월 2일 학교 학생들과 창원 LG세이커스 농구경기를 함께 관람하고, 직접 시구까지 했던 일을 꼽았다. 당시 농구장측에서 시구를 부탁했고, 그는 한 달전부터 체육선생님에게 코치까지 받아가며 연습했다. 결국 경기 당일 시구를 멋지게 성공시켰고, 이날 연패에 빠졌던 홈팀도 그 기운을 받았는지 4쿼터에서 역전승 했다.

 그는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제안에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농구 단체 관람했을 때에도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은 관람객을 위해 작품을 전시하고, 사람들의 얼굴을 만화로 그려주는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또 NC다이노스 야구팀으로부터 선수들 사기를 북돋는 내용의 웹툰 제작을 의뢰해 참여했다. 당시 KBS에서 웹툰 내용을 방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문화관광체육부, 한국도로공사, 창원시청, 김해시청 등과 협업해 공익광고를 제작했다.

 그의 강한 책임감을 보여준 사례가 또 있다. 현재 (사)경남파라미타청소년협회 제7대 회장인 김재호 교장은 지난 2009년 김해파라미타청소년협회장을 맡고 불과 3개월 만에 회원 900명 이상 모아 경남도교육청 정식 봉사단체로 등록된 일화는 유명하다. 최대 3500명까지 회원을 모았던 그는 불교에서 최고 권위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사회ㆍ평생교육 위해 바친 41년 교직생활

 41년 오직 교육 한 길만 걸어갔던 김재호 교장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남들이 어려워하고, 꺼려하는 사회교육과 평생교육을 해야 할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김해에서 전기방앗간 집 아들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에도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런 그의 성정 때문이었을까.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교사가 됐을 때에도 1981년 입시학원 마산대성학원 전임강사, 1983년 산업체학교 인화여자고등학교 교사ㆍ교감, 1994년 경남전문학교 교학처장으로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2000년 경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설립했을 때에도 보편화된 대학입시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기회로 더 많은 학생들에게 대학진학 기회를 주기 위해 애썼다.

 학생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지갑을 여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인화여고 교사 시절 수업비를 받지 않은 보충수업도 많았다. 또 자신 월급 2배가 넘는 비용을 들여 교재를 직접 제작해 나눠준 기억도 있다. 경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청의 지원 없이 사재를 털어 매킨토시 컴퓨터 40대(2억 원 상당)과 소프트웨어 프로그램(3200만 원)을 구입했다. 이후 6년 뒤 소프트웨어 호환 컴퓨터가 개발되자 또다시 컴퓨터 120대를 사비로 구입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수학 여행비를 대신 내준 일, 외국 학생들을 위해 교복과 옷을 사준 일 등 일화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서, 그는 평생교육법에 따라 장학금을 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 지방의회에 건의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는 경남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학교 복도에서 발견한 학생들이 그린 만화캐릭터.
학교 복도에서 발견한 학생들이 그린 만화캐릭터.

-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 못한 학생과 학교

 김재호 교장은 매년 지역 내 고등학교에서 부적응해 전학 오는 40~60명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비행청소년을 줄이는 교육에 중점을 뒀다. 그는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모든 학생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전원 대학에 입학시켰다.

 "미술이나 문학, 간호 등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 주변에 그 재능을 알아보는 어른들이 없다면 아이들은 평생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왜 그것을 잘하게 됐는지, 그것을 이루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어떤 것인지 등을 알지 못하고 한평생을 보낼 수 있죠." 그는 학생 수가 적어 재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학교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교육청과 관계부서를 찾아다니며 "우리 아이들만은 포기하지 말아 달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초중등교육법 적용을 받는 일반 고등학교만큼의 지원만 있었다면 학교가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가 가장 아쉬워했던 대목이었다.

 김재호 교장은 마지막 졸업식에서 "41년간의 교직생활을 이 학교와 함께 마무리하게 됐다. 그동안 선생님들과 학부모 여러분, 그리고 지역민들께서 보내 주신 관심과 성원해 주심에 고맙다는 인사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박희구(전 창원교육장) 운영위원장은 "남다른 봉사정신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에 헌신해 교육자의 현실 참여에 대한 모범을 보여줘 존경 받는 교육자로 오래 기억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해시는 운영이 중단된 학교를 문화예술창작촌 등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다. 김 교장은 이 학교가 지금까지 교육시설로 활용돼 온 만큼 향후 교육 관련 시설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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