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8:09 (일)
세계 최고(最古)인 소로리(小魯里) 볍씨
세계 최고(最古)인 소로리(小魯里) 볍씨
  • 경남매일
  • 승인 2022.07.14 2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의 다층위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졌던 중국 후난성의 1만 1000년전 볍씨보다 수천 년 더 오래된 것이다.` 국어사전에 실린 글이다.

1998년 충북 청원 소로리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사전 발굴 중 2매의 토탄층(부패와 분해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식물의 유해가 진흙과 함께 늪이나 못의 물 밑에 퇴적한 지층)에서 127톨의 볍씨와 곤충화석, 그리고 각종 식물자료가 발굴되었다.

볍씨 등이 집중 출토된 토탄층의 연대를 미국의 연대 측정기관인 지오크론과 서울대 가속기 질량분석 시스템(AMS) 연구실에서 볍씨 시료를 교차검증을 하니 1만 2890년전~1만 4090년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국내 주류 사학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1998년 문화재위원회는 볍씨가 출토된 `토탄층의 보존안`을 일축했다.

이 헌 동전 영운초등학교장
이 헌 동전 영운초등학교장

볍씨가 출토된 문화층에서 사용 흔적이 관찰되는 홈날연모가 나왔다. 이융조 교수는 "소로리 사람들이 이 홈날연모를 써서 다 익은 벼를 수확한 뒤 먹을거리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볍씨가 토탄층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렇다면 소로리 볍씨는 1만 2000~ 1만 5000년전 인간의 먹이얻기로 남겨진 유체로 인류가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융조 교수는 폐교가 된 소로분교를 기념관으로 하자고 하였으나 문화재청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식민사학 유풍에 젖어있는 역사학과 고고학 관련 인간들의 잘못된 역사관이 작용한 것이다.

이 `소로리 볍씨`는 국내 주류 학계의 냉대와 외면 속에 발굴ㆍ연구자인 이융조 교수 등의 동분서주로 국제학계에 알려졌다. 2003년 BBC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가 발견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과학자들이 소로리에서 가장 오래된 순화벼(domesticated rice)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소로리` 관련 기사는 이후 르몽드 등에서도 소개되었다.

고고학 개론서인 제4판(2006년)에 `중요한 식량과 짐승종들이 처음으로 순화된 위치`가 담긴 세계지도를 첨부하면서 `한반도 청주 부근에 쌀그림`을 표시해두었다. 그 책에는 `최초로 순화된 동식물과 전 세계 문화발전 편년표`를 작성하면서 `벼=한국 1만 3000년전`이라고 기록하였다.

국제벼유전학회 상임이사와 한국작물학회장을 역임한 허문회 전 서울대 교수는 "소로리 볍씨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졌던 고양 가와지 볍씨(5200년전)와 크기 및 모양이 비슷하며 현재 재배종에 비해 벼알의 어깨 쪽이 약간 좁고 가운데에서 끝 쪽으로 약간 굵게 보인다"는 관찰기록을 남겼다. 소로리 볍씨가 계속 이어져서 재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사회학과 인류학 등에서 제기된 민족에 관한 이론을 정리하여 원민족, 전근대민족, 근대민족 등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고조선 문명이 중국의 황하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라고 하였다. 소로리 볍씨를 다루던 사람들의 후손들에 의하여 고조선 문명이 출발되었다고 한다.

인류 최초 5대 독립 문명은 모두 독특한 농경문화를 문명의 기초로 해 시작됐다. 고조선 문명은 `단립벼+콩+깨` 재배의 농경문화 유형과, 이에 의거한 `쌀밥+콩장(간장+된장)+깨 양념(향료)`의 독특한 식문화 유형을 형성했다.

신용하 교수는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의 농업혁명은 두 곳이 구심지가 돼 일어났다고 한다. 그 하나가 약 1만 2000여 년전 한반도 중부 남한강과 금강 상류 지역에서 `밝족`(우리의 원민족)이 단립벼(쌀)ㆍ콩ㆍ수수ㆍ조ㆍ기장ㆍ깨 등의 농경에 성공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한 농업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약 1만 1500년전에 비옥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수메르족이 밀ㆍ보리 농경에 성공해 주변 지역에 전파한 농업혁명이라고 한다.

지난 2004년 1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문화유산 관계자들이 소로리 유적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깊은 관심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당시 식민사학 유풍에 젖은 역사인식을 갖고 있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 문화재청 관계자, 정치인들에 의하여 묵살되었다.

소로리 볍씨와 고조선 문명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책사업으로 연구를 하는 정부는 식민사학 유풍을 극복하는 최초의 정부가 된다. 소로분교를 소로리 볍씨와 홈날연모, 세계 최고 수준의 청동 거울인 `다뉴세문경`, 세계 유일 조립식 `비파형동검`, 아름다운 기하학도안 `팔주령` 등의 기념관으로 만들면 대단한 세계적인 역사관광 유적지로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