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4:31 (일)
치사한 기부자, 답답한 기부자
치사한 기부자, 답답한 기부자
  • 김상진
  • 승인 2022.12.07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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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하동노인통합지원센터장<br>
김상진 하동노인통합지원센터장

따뜻한 기부 소식이 들려오는 연말이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기부자들을 만나는 시기다.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사연에 살만한 세상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감동한다.

그러나 착한 기부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치사하고 답답한 기부자들도 간혹 만난다.

사회복지시설로 들어오는 기부는 현금과 물품 기부로 나뉜다. 현금 기부는 기부금액이 정확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물품 기부를 악용하는 기부자들이 문제다. 치사하다고 느낄 정도다. 

사회복지시설은 기부 금품을 받으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부한다. 소득세법(제34조), 조세특례제한법(제78조) 등에 따른 조치다. 기부금 영수증은 기부자들의 각종 세금감면에 쓰인다. 정부가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치사한 기부자들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물품을 기부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로 식품과 의약품 등이 대상인데 미처 판매하지 못한 재고 물품을 기부하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남았으니 하자는 없다. 판매하기는 곤란하고, 창고에 쌓아둬 봐야 버릴 수밖에 없는 폐기 직전의 물품들이다. 직접 생산하지 않는 타사의 이러한 제품을 싼값에 매입해 기부한 뒤 기부금 영수증은 정상가격대로 받아 가는 더 나쁜 기부자도 있다.

치사한 기부자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기부금액만큼 세금을 감면받는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다. 

이러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물품을 사회복지시설은 거절하지 못한다. 다음에는 정상 제품을 기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치사한 기부품을 어르신들예게 전달하면서도 고민이다. 혹시 놔뒀다가 유통기한을 넘겨 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빨리 드시라"고 당부하지만 걱정이다. 유통기한이 1년 미만인 물품은 기부를 못 하도록 하는 등 기부 물품의 유통기한을 제한해야 한다. 남은 유통기한에 따라 기부금 영수증 발행금액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또 답답한 기부자들은 사회복지 현장을 모르는 관리편의주의에 젖은 기부자들이다.

한 기부단체가 추위에 떠는 혼자 사는 어르신께 겨울 난방유 상품권을 기부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이 사는 곳에는 상품권을 발행한 정유업체의 주유소가 없다. 해당 주유소는 1시간쯤 걸리는 군청 소재지에 있다. 그 주유소는 먼 곳까지 난방유 배달을 못 하겠단다. 기부단체에 현지 사정을 설명했으나 설득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난방유를 그 어르신 댁에 배달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사회복지시설 처지에서는 치사하고 답답한 기부자들도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당당하고 세심한 기부문화가 뿌리내리도록 보완할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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