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3:44 (일)
납품단가연동제의 성패는 대기업에 달렸다
납품단가연동제의 성패는 대기업에 달렸다
  • 박선곤
  • 승인 2022.12.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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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경남동부지부장

항간에 소위 3대 거짓말이 있다. "어르신의 일찍 죽어야지"라는 말, 노처녀의 "시집 안 간다"는 말, 장사하는 이의 "밑지고 판다"는 말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밑지고 판다는 말은 최근 중소기업에 대입하면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다. 밑지고 파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업상 거래는 이윤창출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원가보다 낮게 파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중소기업은 원청업체에 납품하는 거래로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 하청업체이기도 하다. 당연히 원청업체에 비해 열악한 가격협상력을 가지고 있고, 이는 원자재가격 등의 요인으로 제조원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최근의 국면에서도 상승분을 적시에 납품가에 반영할 수 없어 중소기업을 원가 이하 판매로 내몰기도 하는 것이다. 

BNK 경제연구원에 의하면 글로벌원자재 가격은 지난해에만 50.5% 상승했고 이러한 추세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0년 내 최대상승 폭이었다. 대기업을 포함한 원청업체가 원자재 상승분을 납품가격에 반영해 주지 않거나 최소한만 반영해주는 거래로 원자재가격 상승의 충격을 회피하고 있는 동안 많은 중소기업은 밑지는 장사를 해야만 하는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청 중소기업이 스스로 거래를 끊기도 어렵다. 당장에 매출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으로 전체 중소제조업체의 85% 이상이 다른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인 마당에 원청업체와의 거래 단절은 폐업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이런 원청-하청업체 간의 힘의 불균형에 따라 원자재상승분은 고스란히 최약체인 하청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직결되는 양상이다. 

원자재비용 상승분의 단가 미반영이 원청업체 입장에서는 당장에는 이익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납품단가연동제의 최대수혜자는 밸류체인 말단에 있는 하청중소기업이 맞다. 통상 대기업-1차-2차-3차 벤더 등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에서 하위로 내려올수록 원가에서 원자재비용이 차지하는 비용이 높아져 원자재비용상승이 영업이익에 미치는 강도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이 적정이윤을 가진다면, 연구개발하고 관리시스템을 고도화하여 원청업체에게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현대 밸류체인 하에서는 아무리 큰 대기업이라도 하청업체의 공급 없이는 완제품을 만들 수 없다.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에게 일종의 운명공동체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입법화가 추진되고 있는 `납품단가연동제`는 원청과 하청업체 모두에게 득이 되는 당연하고 적절한 조치이다. 추진되고 있는 납품단가연동제에는 납품단가연동 조항을 거래약정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이행시 인센티브를 위반시 과태료 등의 제재를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된다고 한다. 하청중소기업에게는 원자재비용의 급격한 상승에도 경영상의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법제화의 내용 중에는 약정서 작성 시 납품단가 조정비율은 자율 합의에 맡기고 양자가 합의한 경우 등은 적용 예외로 한다는 등 당사자 간 재량과 자율의 영역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필자가 만나 본 지역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납품단가연동제를 환영하고 있다. 다만, 당사기업 간 합의에 상당 부분을 맡겨 놓으면 원청업체의 힘의 논리가 제도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 효과를 반신반의 하는 반응도 있다. 납품단가연동제가 없는 시절에도 원자재가격 인하로 인한 원가하락은 원청업체의 요청으로 단가에 반영하는 `부정적인 연동`을 경험한 중소기업 경영자들로서는 당연한 우려이기도 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혜택과 제재를 강화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규정과 공권력으로 강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부작용도 있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것은 원청기업 특히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자세의 전환이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의 변화다. 원청업체 중에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밸류체인의 최상층부인 대기업이 납품단가연동제에 적극 참여해야만 1차 2차 벤더들이 3차 4차벤더들과의 납품단가연동약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우수한 밸류체인은 구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하청업체가 적정한 이윤을 바탕으로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이라는 것을 대기업을 포함하는 원청업체들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소하청업체가 장래에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여 국가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주체발전하는 또 하나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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