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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비판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비판
  • 이헌동
  • 승인 2023.01.12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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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역사관이 잘못되면 억울한 일과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바람직한 역사관 정립은 매우 중요하다. 1994년 제1회 한국사회학회 학술상을 수상하고 300여 편의 논문과 30여 권의 책을 저술하면서 일제 식민사관의 주요논리를 뽑아버린 최재석 고려대 교수는 학술원 회원이 되지 못했다.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20여 년을 학술원 회장을 역임하였기 때문이다.

식민사학을 거부하고 바른 역사정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고난을 겪은 최재석 박사의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이란 책을 보면 식민사학의 횡포로 어떤 억울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아래 글은 고(故) 최재석 박사의 글인데 역사관 정립에 도움이 되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일본고대사와 한일 고대관계사의 연구사는 처음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치선전의 기능을 해왔다. 백제가 663년 백강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백제 지배층이 한반도에서 철수한 57년 뒤인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 는 누구나 아는 대로 왜곡과 창작이 심한 역사서다.

특히 고대일본과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관계를 크게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연대까지 조작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역사서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고대 한일관계사 왜곡의 큰 틀을 만든 쓰다 소키치는 <일본서기>가 백제 중심으로 쓰인 것을 개정하지 못했던 것을 한탄했다.

조선총독부와 경성제국대학 소속으로 패전 후 임나의 강역을 경상도에서 전라도와 충청도까지 확대한 스에마스 야스카즈도 "일본서기를 진실을 구하는 태도로 가지고 대하면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게 된다."고 실토했다. 이들에게 역사는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 점령을 합리화 하려는 전제에 꿰어 맞춘 정치선전에 불과했다는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삼국사기> 불신론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 목적이었다. 일본고대사 학자들은 삼국사기 불신론을 전제로 고대한국은 일찍부터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식민지 내지 예속국이었다는 전제를 깔고 일본고대사를 언급한다. 1945년 패전 후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으로 일시 약화하는 듯하더니 다시 총독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이들은 누가 보아도 사실인 기사를 조작으로 몰거나 왜곡 해석하고, 누가 보아도 조작이 분명한 기사도 사실의 기록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시종 모순되고 황당무계한 주장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1945년 패전 후에도 이런 비학문적인 정치선전을 계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인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도 쉽게 알게 된다. 이병도를 필두로 김철준, 이홍직, 이기백, 이기동, 문경현을 거쳐 김현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왜곡시킨 한국고대사 및 고대 한일관계사를 거의 그대로 추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사학 극복에 앞장서야 마땅한 한국사학계에서 오히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데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주장을 고칠 까닭이 있겠는가?

필자는 1985년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과연 조작되었는가>("한국학보" 38)를 발표한 이래 일제의 왜곡된 임나일본부설 및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에 학문인생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300여 편 이상의 학술논문과 30여 권 이상의 학술저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필자가 출간한 자서전 <역경의 행운> (만권당, 2015) 서문에서 "그동안 내가 겪은 심적 고통을 되돌아보면, 학문하는 사람가운데 나만큼 그러한 고통을 겪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회고한 것처럼 식민사학이 장악한 한국 사회에서 식민사학을 비판한다는 것은 무수한 고난을 자초하는 길이었다. 식민사학자들은 필자가 제기한 학문적 질문에 대한 학문적 답변은 거부하는 대신, 인간적 모욕을 가하거나 때로는 막강한 학문 장악력을 이용해 필자가 한국 학계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무시하는 방식으로 필자의 연구결과를 매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진실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으로 연구실을 지키고 학문을 계속했다. 병든 구순의 노인에게 기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최근 식민사학이 퇴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서 필자의 학문인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으로 기쁘던 차에 이 책까지 내게 되었으니 필자의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훗날 지하에 가서 조상들은 물론 독립운동가 선열들께도 말씀드릴 거리가 생겼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맞는다는 것은 YouTube에서 `KBS 역사스페셜 잃어버린 왕국, 백제의 풍납토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식민사학자들은 백제가 제대로 된 국가가 된 것은 3세기 후반 고이왕 때라고 하지만, 풍납토성의 유물과 유적은 기원전 1세기 시작된 것으로 이 당시 제대로 된 국가체제를 가지고 대단한 국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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