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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불교 전래의 사실 연구
가야불교 전래의 사실 연구
  • 경남매일
  • 승인 2023.06.1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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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지난 11일 김해 문화원 대강당에서 가야문화진흥 학술대회가 열렸다. 휴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김해지역 국회의원 두 분과 김수로왕 후손들이 많이 보였다. 가야불교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서 고무적이었다.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인 도명 스님은 인사말에서 김수로왕이 가야를 건국한 6년 후인 서기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시집올 때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파사석탑을 싣고 왔는데 탑은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고 탑이 왔다는 것은 불교가 도입된 것이라고 하였다. 자세한 것은 KNN에서 제작한 <과학으로 본 허황옥 신행길 3일>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면 알 수 있다.

복기대 인하대 교수가 <헝클어진 가야사>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였다. 식민사학에 의하여 헝클어진 가야사를 바로잡기 위해 5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삼국유사를 믿어야 한다. 그러면 가야사의 기본이 성립된다. 둘째 가야와 임나를 구분해야 한다. 셋째 원삼국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 이 용어는 삼국사기 기록에 초기 삼국시대의 기록이 있음에도 삼국의 건국과 발전을 부정하는 해괴한 용어다. 넷째 강은 문화를 잇는다는 자연환경과 교역이라는 측면에서 가야사를 보자. 다섯째 발해사를 복원한 유득공이나 김육불의 경험을 참고하여 가야사를 복원해 보자. 또 다른 관점에서 가야사를 보게 하는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김명옥 건국대 교수가 <허왕후는 만들어진 신화인가>란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김태식ㆍ이광수ㆍ백승충 등은 허왕후 신화가 7세기 문무왕이 수로왕을 종묘에 모신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들은 수로왕의 건국신화ㆍ허왕후와의 결혼담ㆍ불교의 가야 전래를 기술한 <가락국기> 역시 후대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야가 42년에 건국되지 않았다면 삼국사기 파사이사금 조의 수로왕 기사나 1~2세기 가야와 신라의 전쟁기사를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이 서기 42년 가야 건국을 부정하고 허왕후를 상인집단으로 만든 것은 사료에도 없는 추정에 의한 허구로 3세기 이후에 임나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것을 추종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김해시사(金海市史)에 있어서 논란이 되었다.

가야가 임나가 되려면 가야는 42년에 건국되어서는 안 되고 허왕후의 도래도 부정되어야 한다. 허왕후의 도래를 인정하면 가야의 세계(世系)를 인정해야 하고 가야불교도 인정해서 임나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허왕후는 만들어진 신화라고 하는 주장들을 학술적으로 잘 비판하고 극복한 강연이었다. 자세한 것은 학술대회 책에 나와 있다.

이어서 문광희 동의대학교 명예교수가 <弁(곳갈)ㆍ가야와 불교>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필자는 이 강연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가야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변(弁)이라는 고깔모자를 통하여 가야와 불교와의 관계를 분석 연구하였다. 변한(弁韓)은 고깔을 쓰는 한인(韓人)으로 종족적 의미가 강하다. 변을 쓰는 한인이라는 동질성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은 신라와 고구려, 백제에도 있었다. 변한의 고깔문화는 가야를 설명하는 기본으로 한국전통문화의 뿌리다.

가야의 변(弁) 문화속에서 불교를 인식할 수 있는 많은 증거가 입증되는데, 이들은 중국불교의 유입 이전에 있었던 것이다. 이 연구는 가야의 실증적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변(弁)이라는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해 본 것이다. 향후 가야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일본과 중앙아시아 유목민들 중에서 가야의 고깔과 같은 사례를 분석 연구하면 가야의 고깔과 불교에 관한 많은 것이 정리되리라 사료된다고 한다. 연구자는 복식전문가로서 좋은 성과가 기대되는 훌륭한 연구였다.

마지막 주제 발표는 부은사 주지 지원스님의 <수로왕과 가야불교의 시작에 관한 고찰> 이었다. 지원스님은 동국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가야불교 관련 논문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수도 신답평에 관련된 "16나한이 머물만한 곳이다", 파사석탑조의 전우(展宇), 술법겨루기, 삼랑진 만어사 어산불영(魚山佛影)조의 "부처를 청하여 설법을 한 후에 나찰녀가 오계를 받았다" 등이 불교와 연관이 있으며, 가야불교 연기사찰에서도 가야불교의 시작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가야문화연구원을 창설한 조은 금강병원 이사장인 허명철 박사가 파사석탑의 부재들을 연구한 결과 사리를 보관한 공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인도 소나리에서 발견된 BC 2세기 사리용기는 파사석탑에 충분히 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그래서 파사석탑은 사리탑으로 가야불교의 시작을 밝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파사석탑의 재질을 성분분석하니 국내에는 일치된 산출지가 없었다.

토론자로 인도에서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용준 고려대 교수는 지원스님의 연구는 유라시아 교류사 및 비교문명사로서의 가야불교 연구를 응원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파사석탑 석재 원산지와 초기불탑 연구를 인도지역에서 할 것을 제안하였다. 다양한 관점의 연구로 가야불교가 정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학술대회였다. 경남도지사의 축사 글은 있었으나 김해시장의 축사 글이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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