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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카투사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
한국은 카투사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
  • 경남매일
  • 승인 2023.07.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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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범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한승범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지난 26일, 고(故) 최임락 일병의 유해가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거수경례를 거쳐 산화한 카투사 전사자를 맞이했다. 그는 만 19세의 나이로 지난 1950년에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카투사로서 미 7사단에 배치돼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10월 장진호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 육군의 전사자는 14만 2927명에 달했다. 전체 참가자 81만 3642명 중 17.6%가 전사했다. 반면, 미군의 전사자는 3만 6492명으로 전체 파병자 160만 명 중 2.28%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카투사는 어떠한가? 미군과 같이 생활하며 생사를 함께 한 카투사는 총 4만 3660명 중 1만 1365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카투사 전사자 비율은 무려 26.03%로, 그 희생이 가장 컸다.

카투사의 희생이 한국 육군에 비해 월등하고, 미군에 비해 10배 이상이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카투사는 솔선수범해 최전선에서 북한군과 싸웠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김일성의 침략으로 풍전등화의 신세가 됐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반격의 기회를 잡았지만, 외국 군인에게 한반도는 지옥과 다름없었다. 4계절이 뚜렷한 한반도는 살인적인 폭염과 한파가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였다. 더욱이 언어 소통이 힘들고, 피아 식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때 한반도에서 국제 정세에 가장 밝았던 이승만 박사는 `신의 한 수`를 뒀다. 8월에 그는 전에 없던 카투사(KATUSA, 미국 육군 증강 한국군) 제도를 제안했다. 외국 군인 입장에서 도저히 식별이 불가능한 국군과 인민군의 차이, 암호 해석, 포로 고문, 한국적 지형 파악 등에서 카투사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 카투사의 배치로 인해 유엔군은 마침내 눈과 귀가 열리는 기적을 경험했다.

카투사 전사자 26.03%의 비율이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카투사는 `유엔군의 총알받이`였다. 동시에, 그들은 대한민국을 위한 `위대한 총알받이` 역할을 수행했다. 참전 용사 셔먼 프랫 대위의 증언에 따르면,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카투사들이 열심히 싸우다가 전사했다. 영어도 이해하지 못해 어처구니없이 전사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만일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30만 명의 카투사 예비역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까? 비상 상황에서 카투사 예비군들은 미국 본토와 일본에서 온 미국 증원군에 배치된다. 이번에도 카투사 예비군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위대한 총알받이`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ㆍ정전 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 피 묻은 군복 위에 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카투사의 희생과 헌신, 피 묻은 군복 위에 섰다"라고 부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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