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3:57 (토)
지리산에 필요한 것은 케이블카가 아니다
지리산에 필요한 것은 케이블카가 아니다
  • 이수빈 기자
  • 승인 2023.08.24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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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 경제부 기자

매미 소리가 한둘 귓가에 모여들기 시작하던 지난 초여름 지리산 국립공원을 찾았다. 하동 청학동을 출발해 남부능선 삼신봉에 올랐다. 계곡을 거슬러 가는 등로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인사를 건네고, 영롱한 빛깔의 청개구리가 숨바꼭질을 한다. 정상에 오르자 노고단에서 뻗어진 지리산 주 능선과 우뚝 솟은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가늠하기 어려운 규모의 산새와 잡티 하나 없는 초록의 물결에서 지리산의 위용이 느껴졌다. 그러나 가슴이 뻥 뚫리는 경관도 잠시, 지리산을 두고 나오는 온갖 잡음이 하산길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환경부가 지난 2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조건부 동의하며 국립공원 개발 제한 빗장을 풀자 전국에서 국립공원 개발 계획이 우후죽순 일어나고 있다. 특히 1호 국립공원 지리산을 끼고 있는 경남ㆍ호남 지자체들도 관광객 유치와 지역 발전을 내세우며 케이블카ㆍ산악열차 건설 등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장밋빛 전망으로 포장된 개발 계획과 달리 지리산은 지금 깊은 속병을 앓고 있다. 지리산 해발 1600m 이상 고지대에 사는 우리나라 고유종 구상나무는 기후 변화로 하얗게 말라 죽어 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봄ㆍ겨울 기온 상승과 적설량 감소, 가뭄, 여름 폭염 등 기후변화가 구상나무의 대규모 고사와 쇠퇴를 유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평균 4℃ 이하였던 고지대 기온이 지난 2018년엔 7℃까지 치솟았다. 고산침엽수가 더 이상 살기 어려운 환경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구상나무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 생태도 머지않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지대 비탈면에서 산사태도 빈번히 발생해 탐방객을 위협하고 있다. 토양을 잡아주던 나무가 사라져 지반이 약해진 탓이다. 산사태 규모와 빈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환경단체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10년대부터 천왕봉을 중심으로 대규모 산사태가 10여 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으로 집중호우 강도가 심해질 경우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 변화가 지리산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기후 변화로 피해를 입은 구상나무의 모습은 장차 인간에게 닥칠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를 우리에게 미리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는 것을 자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지리산에 필요한 것은 탄소를 흡수해 줄 울창한 숲과 나무 그리고 식생 회복을 위한 휴식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리산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ㆍ관리해야 한다. 특히 구상나무같이 기후 변화에 따른 식생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야생생물 보호를 위해 탐방로 수를 줄이고, 도로를 숲길로 복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필요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지리산 국립공원을 보호지역으로 등재하고 국제적으로 우수하게 관리되고 있는 보호지역인 `녹색목록`으로 인증했다. 또 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종 44종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ㆍ최대 육상생태계의 보고다. 야생 생물이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한번 훼손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일임을 되새겨야 한다고 환경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개발과 보존은 공존할 수 없다. 자연이 황폐화되면 관광도 의미가 없다. 지리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후대에 물려줘야 할 자연 유산이다. 건강한 지리산이 우리에게 내어줄 무한한 경제적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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