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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천의 아침
양산천의 아침
  • 경남매일
  • 승인 2023.10.1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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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부산여대 겸임교수·사회복지 박사
이영조 부산여대 겸임교수·사회복지 박사

열대야 탓일게다. 잠을 설친 이른 새벽 찌뿌둥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지만 잠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뭘 하지', 궁리를 해봐도 마땅한 놀잇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눈도 뜨지 못한 반수면 상태로 뇌는 부지런히 생각 활동을 이어갔고 자전거 산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의 애마, 로드용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자전거 위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이 아늑한 잠자리를 벗어난 아쉬움을 한순간에 걷어갔다. 아침 풍경은 활기로 넘쳐났다. 자전거 위에서 마주하는 아침 풍경은 운동을 통해 얻는 효과에 더해 삶의 의욕을 더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보너스로 주었다. 나는 페달링을 서두르지 않았다. 걷고 뛰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아침 일상을 즐겼고,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으로 끝없이 들어갔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는 삶의 법칙을 새삼 몸으로 느끼는 아침이다. 새벽 잠자리를 양보하는 아쉬움 대신 정신적 행복을 선물 받았다. 서서히 페달링 속도를 높였다. 빨라지는 속도에 비례한 바람이 강하게 얼굴을 때리고, 가슴속 깊은 곳까지 전율처럼 흘러들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피곤했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났다. 화명동에서 호포까지 아침 산책 수준의 가벼운 라이딩을 계획했던 마음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뀌었다. 자전거에 실린 몸이 공중 부양되어 허공을 내달리는 기분 좋음이 리턴을 허락하지 않았고, 양산천과 만나는 커브 길에 다다르자 페달을 밟고 있는 양쪽 발에 힘과 속도를 높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결심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에 내심 놀랐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즐거움이 작심을 이기는 순간이다.

비틀거리듯 힘겹게 앞서가는 자전거를 추월했다. 라이더는 족히 80세가 넘어 보였음에도 건장함이 느껴졌다. 20년 후 나도 저 모습이고 싶다. 가능하겠지, 나의 자문에 '그럼,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마음의 울림을 들으니 다리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더 달려' 머리가 속도를 더 높이란다.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가 얼마일까' 두 다리는 피스톤처럼 빨리 움직였다. 머릿속에 엔도로핀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불끈 힘이 솟아나고 몸은 허공을 날았다. 희열이 온몸을 감쌌다. 깍깍. 머리 위에서 까치가 함께 날면서 길 안내를 자청했다. 혼자라서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다. 까치가, 신선한 아침 공기가, 멀리, 또는 가까이서 자연을 수놓은 푸르른 녹음이 기꺼이 벗이 돼 주었다.

'어디로 갈까요.' 애마가 다급히 물었다. '직진!' 긴말이 필요치 않았다. 뇌에서 내리는 단답의 명령이 중추신경을 타고 다리에 전달됐다. 최종 명령지는 낯선 곳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일까.' 미지의 개척자가 된 나는 또 다른 설렘을 안고 탐험 길에 서 있다. 두렵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한 발, 한 발, 내딛는 우리들 삶은 모험이고 탐험이다. 그 길은 두려움도 있지만 경이감으로 보답한다.

양산천 탐험은 백전노장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새로운 길로 걸어 들어가는 낯선 긴장감을 즐기고 있다. 좌측에 길게 늘어선 양산천은 바람 한 점 없는 호숫가에 고인 물처럼 움직임이 없다. 물은 대형 거울이 되었다. 목화솜만큼 뽀송한 하얀 구름 밑에 심술 가득해 보이는 먹구름이 하늘의 악동 자처했고, 그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민 파란 하늘은 여럿이 쪼개진 산 사이 골짜기를 메운 안개와 어우러져 비경으로 양산천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양산 타워가 눈앞에 우뚝 서 있다. 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그 사이를 졸졸대며 빠져나가는 물의 역동, 쭉 뻗어 끝이 보이지 않는 자전거 도로 곁에 일렬로 늘어져 수놓은 노랑 야생화는 가슴 깊이 숨겨진 촬영 본능을 깨웠다. 작품용 사진 3장을 건지고 뒷주머니에 폰을 꽂아 넣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SNS에 올려야지' 60이 넘은 나이임에도 일면식도 없는 페친, 카친, 블로거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부지런하시네요, 보기 좋아요.' 이런 댓글을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애마는 좁아진 길로 접어들어서 달리고 있다. 가야 할 길은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막다른 길일까, 아님, 또 다른 길로 이어져 있을까, '미리 고민하지 말고 일단 가보자' 해결되지 않을 고민으로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다.

길은 끝나지 않았다. 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오르막 경사길로 이어졌다. 이름 모를 산으로 들어가는 미지의 도로다. 길의 초입까지 올랐다. 이 길은 다음에 내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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