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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일본서기>의 임나가 맞는가
가야가 <일본서기>의 임나가 맞는가
  • 경남매일
  • 승인 2023.11.0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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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김태식은 "임나일본부설은 일제시기 일본이 우리에게 강요한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통해 한국고대사를 왜곡시키고 한국인에게 열등감을 조장했다. 사실 그들이 '임나'라고 부르는 곳은 고대 한반도의 가야지역에 해당한다"(역사비평편집위원회, <한국전근대사의 주요쟁점>, 역사비평사, 2008)고 하였다.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면서도 가야가 임나라고 한다. 김태식 뿐만 아니라 김현구와 이영식을 비롯한 적지 않은 가야사 전공자들이 가야를 임나라고 한다.

'가야=임나설'은 <일본서기>에 고구려·백제·신라와 임나가 등장하는데, <일본서기>는 가야를 임나로 불렀다는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신라왕이 야마토왜의 침략을 우려하여 고구려 왕에게 구원을 요청하는데 고구려 왕이 백명의 군사를 보내주었고, 백제와 임나 사람들은 개와 닭의 주인이 누군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는 구절도 있다.

또 적의 군세만 보고 두려워서 항복하는 신라왕, 신라가 항복하는걸 보고 덩달아 충성맹세를 하는 백제왕, 4국의 사신이 야마토조정에 동시에 입조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이 기록들에 있는 <일본서기>의 4국은 우리나라의 고구려·백제·신라·가야 4국이 아니라 일본의 작은 부락국가나 소국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사람들이 일본 열도에 세웠던 4국의 분국들이다"라는 김석형의 '분국설'이 큰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일본군 참모본부의 광개토대왕릉비 조작설을 제기했던 재일사학자 이진희 교수는 김석형의 논문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역사평론>에 게재하여 일본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임나일본부는 우리나라 가야지역에 없었다고 하면서 가야에 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하거나 야마토 왜에서 파견한 관원들이 있었다고 하는 변형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태돈은 <일본서기> '흠명기'에 나오는 "재안라제왜신등(在安羅諸倭臣等)"에서 여러사람을 뜻하는 '제(諸)'자를 빼버리고 "재안라왜신등(在安羅倭臣等)"으로 만들어 왜의 왕실에서 파견한 명칭으로서 사용하였다. 노태돈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지만 글자를 조작한 역사서술이 정당할 수가 없다.

김태식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제 7권 <가야사 인식의 제 문제>에서 가야사보다 임나사를 먼저 논하면서 "아유카이 후사노신이 방대한 문헌고증을 통하여 임나의 지명 비정 범위를 경상북도와 충청도 까지 확장시켜서 임나는 경주 부근과 부여와 공주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역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것은 일본서기에 왜의 한반도 내 지배 영역이었다고 상정된 임나의 범위를 넓혀 잡기 위해 그가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함으로써 얻어진 연구 결과였다고 여겨진다"고 서술하였다.

김태식이 칭송한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낭인 깡패로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창한 식민사학자다.

강단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는 우리나라에 없었다고 하면서 관련 지명을 우리나라에서 찾는다. 유네스코에 가야고분군 등재 시 '다라국'과 '기문국' 명칭 사용과 <전라도 천년사>의 논쟁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나일본부가 일본에 있었다면 관련지명도 일본에서 찾아야 상식이다. 상식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역사학계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런 글을 쓴다.

기경량은 국민들이 분노하여 2번의 방영으로 하차한 조선구마사를 옹호하고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조는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 역사를 비하하는 것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과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이 좋아할 주장이다. 또 고려국경이 요하였음에도 이를 조작하여 지금의 압록강으로 만든 반도사관의 주창자로 이병도의 스승인 식민사학자 쓰다 쏘기치를 양심적인 학자라고 하면서 민족주의 사학자 정인보를 비아냥 된다. 가야 사람들이 일본열도에 세운 나라가 임나라는 분국설을 주장한 김석형의 학설도 비아냥거린다.

위가야는 "김석형의 학설이 생명력을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분국설은 북한학계의 정설로 이어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식민사학을 극복하고자 하는 남한의 사학자들과 바른 역사관을 지닌 국민들이 지지하는 학설이다.

안정준도 "북한학계도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북한학계가 낙랑군=평양설을 폐기하고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한 것은 1960년대다. 이들은 일제 식민사학의 핵심인 '낙랑군=평양설'과 '임나=가야설'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매국의 동북아역사지도를 비판한 사람들을 유사역사학으로 비판한 논문을 진보사학지인 <역사비평>에 글을 올리고 얼마뒤 대학의 정규교수가 되었다. 그래서 식민사학 카르텔이 극복되지 않으면 역사학의 진정한 발전이 어렵다는 현실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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