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6:06 (일)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진정한 문화의 멋 확인하는 과거여행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진정한 문화의 멋 확인하는 과거여행
  • 한지현
  • 승인 2024.01.11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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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릴르 쉬르 라 소르그` 골동품 시장
도시 전체가 세월 깃든 박물관으로 변모
1966년 이래 유럽 골동품 시장의 중심
지난 역사 및 가치 재발견 진귀한 경험
아기자기한 골동품 장식 물가 정원.
아기자기한 골동품 장식 물가 정원.

화려한 장식품과 장신구의 역사로 유명한 프랑스, 거리마다 각양각색의 상점들이 즐비하지만 진정한 프랑스의 멋은 다름 아닌 벼룩시장과 골동품 시장에 숨어있다. 주말이면 각 도시는 커다란 짐보따리를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로 분주하다. 손때 묻은 장난감, 화려한 장식의 소품, 낡은 고서, 고풍스러운 가구 등 소소한 역사가 깃든 물건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물건들 속에서 특별한 보물을 찾아내는 것 또한 시장을 방문하는 묘미 중 하나다. 지역마다 봄이나 가을철이면 지난 계절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대규모 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도시에 둘러 흐르는 운하 따라 줄지어진 상점.
도시에 둘러 흐르는 운하 따라 줄지어진 상점.

그중에서도 남프랑스 소도시 릴르 쉬르 라 소르그(L`Isle-sur-la-Sorgue)는 영국의 런던, 파리의 생투앙을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골동품 시장이다.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골동품`이라 새겨진 간판들이 줄줄이 늘어진 진풍경이 펼쳐진다. `소르그(Sorgue)` 강 중심에 자리한 이 도시는 물줄기 사이로 우뚝 선 모습이 `섬` 같아 `소르그 강 위의 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도심을 아우르는 운하의 모습이 이탈리아 베니스를 연상시켜 `프로방스의 베니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구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도시는 프로방스 특유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더해 세계적인 골동품 시장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이끈다.

고풍스러운 무늬가 돋보이는 골동품 시장의 가구들.
고풍스러운 무늬가 돋보이는 골동품 시장의 가구들.

릴르 쉬르 라 소르그가 골동품 도시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0년부터 가구 제작을 하며 지역에서 입지를 다진 레기에(Legier) 가문의 자손 르네 레기에(Rene Legier)는 친구 알베르 가씨에(Albert Gassier)와 1996년 8월 15일 처음으로 국제 골동품 및 벼룩시장 박람회(Foire Internationale Antiquites et Brocante)를 조직한다.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주변 도시들에 대응해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행사를 만들고자 한 바람이었다. 14명의 상인으로 소규모로 꾸려졌던 이 골동품 박람회는 금세 입소문을 타며 큰 성공을 얻게 되고, 매년 8월 15일과 부활절마다 열리는 대규모 골동품 박람회로 자리잡게 됐다.

골동품 상점 단지 입구.
골동품 상점 단지 입구.

1980년대에 이르러 골동품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릴르 쉬르 라 소르그로 모이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도시 곳곳에 골동품 상점 단지가 형성되면서 박람회 기간 외에도 연중 내내 골동품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농업, 어업만이 주산업이었던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가 한 가문의 노력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골동품 도시라는 명성을 얻은 셈이다. 오늘날 릴르 쉬르 라 소르그에는 6개의 골동품 상점 단지, 250개의 상점, 300명의 골동품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으며, 5일 간의 박람회 행사 기간에는 평균 약 1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골동품 상점 앞 진열된 오래된 소품들.
골동품 상점 앞 진열된 오래된 소품들.

매주 일요일이면 도시 장터와 함께 거리로 나선 골동품 상인들 또한 만나볼 수 있다. 물이 흐르는 운하를 따라 도시를 둘러싼 장터의 모습이 장관이다. 프랑스 장식문화의 전성기였던 18세기 가구를 비롯해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 제품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에서 공수된 다양한 골동품이 모여있다. 도시 전체가 골동품 박물관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시장의 또 다른 한편에는 지역의 수공예품이나 예술가들의 작품 또한 전시돼 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상점들을 한 곳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골동품 시장의 재미다.

골동품 시장을 방문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상인과의 만남이다. 대다수의 상인은 몇 대 째 가문의 사업을 이어나가는 골동품 전문가들이다.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골동품이 스쳐 간 세월을 따라 지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들의 반짝이는 두 눈 속에 가업에 대한 자부심과 골동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지난 역사와 가치들을 재발견하는 진귀한 경험, 바로 골동품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시장을 걷다 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을 잡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따라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어린아이들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골동품의 가치는 이처럼 세대를 넘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낡고 철이 지나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물건들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골동품 시장,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온고지신`의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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