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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 멸망 예언의 예레미야, 눈물 리더십
남유다 멸망 예언의 예레미야, 눈물 리더십
  • 경남매일
  • 승인 2024.02.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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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하 인제대 국제통상학과 교수ㆍ시인
원종하 인제대 국제통상학과 교수ㆍ시인

솔로몬 하면 지혜의 왕, 사무엘 하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기도의 손, 예레미야 하면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눈물의 선지자로 기억된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와 끓는 가마 환상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그 로고스(logos)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파토스(pathos), 즉 감정을 가지고 전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심지어 같은 제사장 가문의 예언자 그리고 왕마저도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 뜻과 이익을 향하여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목숨을 걸고 여러 가지 상징 언어를 사용하여 40년 동안 쉼 없이 호소한다.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예레미야 1:1)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일으켜 세워 주시기를"이다. 12지파 중 가장 작은 땅, 몰락한 제사장의 가문에서 한 사람을 세워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린 것과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한 것이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렘1:2),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와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렘1:3). 남유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상황이며 멸망의 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예언자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지정학적으로 북으로부터는 바벨론 제국의 위협을, 남으로부터는 오랜 관계 속에 있는 애굽의 친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서 좌충우돌식 외교정책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때이다. 남유다는 바벨론을 배신하게 되고 이때부터 바벨론은 응징을 시작하고 3차례에 걸쳐 백성들을 무자비 하게 포로로 끌고 가는 포로 시대의 막이 오르게 된다. 예루살렘에는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 남겨 바벨론에게 대항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의해 세워진 왕이었다. 바벨론이 원하는 대로 조공을 바치고 정책을 펼쳐야 했던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의 지시에 따르고 싶지 않아 여러 가지 묘책을 강구하고,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정책에 순수히 따르기를 권한다. 왕의 생각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신하들과 시드기야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충돌 할 수밖에 없었다. 갈등은 심화되고 권력자 주변에 있는 가짜 선지자 하나냐와도 설전을 벌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예레미야는 바른 소리를 전하는 참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왕과 제사장, 시대에 맞선 결과 동굴에 갇히게 되고 도망 다니고 감옥에 수감되고, 고향 아나돗 사람들에 의해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남유다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의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된다는 새 언약을 예레미야를 통해 전하게 한 것이다. 우상숭배 그리고 타락과 부패로 점철된 상황에서도 한 귀를 막고 결코 듣지 않으려는 마음이 앞선 자는 결국 본인의 뜻을 관철하고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여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 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 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 20:7-9)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자기의 처지와 입장을 표현 했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알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열정을 바쳐 행위예언을 통해 눈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며 받아들일 것을 호소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8개월 동안 버텼던 성문이 바벨론의 군사에 의해 열리게 되고 시드기야 왕은 도망치다 잡혀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고, 어린 아들도 죽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본 예레미야는 "내가 너무 울어서 내 눈이 눈물에 상했다. 그리고 너무 아파서 내 간이 땅에 쏟아진다. 내 창자가 끊어진다." 자신의 아파하는 모습을 자신의 육신의 고통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은 위기를 미리 예언하고 전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다. 악하고 패역한 이 시대를 보며 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걸고 눈물로 호소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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