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0:47 (일)
취약계층, 그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취약계층, 그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 장영환 기자
  • 승인 2024.02.18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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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환 경제부 기자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취약계층'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취약계층 가구에 기부금 전달', '취약계층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 해소', '교육 취약계층 학생들 증가' 등의 용례처럼 취약계층이라는 말은 어려운 상황 속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취약계층이라는 단어는 한때 우리가 사용했던 '소외계층'을 대신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언어 순화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과 복지계의 인사들이 기존의 소외계층이라는 말뜻에 담긴 차별성에 주목해 대신 사용을 권장하며 쓰이게 됐다. 그래서 여름과 겨울 같은 사람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계절이 다가오면 그 사용 빈도는 늘어난다.

그렇다면 취약계층은 무슨 뜻일까? 취약(脆弱)은 무르거나 가벼워 튼튼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고, 계층(階層)은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들을 특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에서 취약계층을 의미하는 vulnerable social group에서 vulnerable은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쉬움을 의미한다.

학계에서는 첫째,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거나, 사회적 위험이 발생했을 경우 현재의 경제적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개인이나 계층'. 둘째,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장애인, 편부모가정),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 사람(구직청년, 취업이 어려운 중ㆍ고령층, 출산 여성), 사회적 위험(질병, 산업재해, 실업ㆍ실직 등)에 노출돼 있는 사람'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상의 뜻을 살펴보면 취약계층은 누구나 될 수 있으며, 나는 물론이고 내 주위 사람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이 '취약계층'이라는 말이 기존의 '중립적인' 뜻과 조금 다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다양성을 지닌 여러 사람을 '취약계층'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해 '그들'로 만드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는 관공서의 '홍보' 기사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예를 들어 어느 공무원이 '취약계층'에게 쌀을 기부했다거나, '취약계층'이 올바른 교육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등의 '미담'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마치 '그들'이 아닌 '우리'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보도에서 자주 보이는 '대상화'는 '취약계층'을 수동적이고, 보호가 필요한 '그들'로 묘사하고 있다. 마치 먼 옛날 사용되던 '상중하 사회' 담론에서 '하류사회'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말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무게가 다르고, 힘이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단체가 하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힘이 있는 말에는 규정성이 있다. '그들'이 아닌 '말할 권리가 주어진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취약계층'이란 표현으로 '그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이른바 '취약계층'은 국가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공서는 '그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만을 강조하기에 앞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그 구조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을 '구조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을 열심히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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