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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무변의 역학 세계
광대무변의 역학 세계
  • 경남매일
  • 승인 2024.03.1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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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주역에 입문한 지도 어언 7년이 넘었다. 64괘와 384효만 깨치면 역인이 되는 줄 착각하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볐다. 그러나 역의 심연은 그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도 광대했다. 파고 또 파도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미궁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주역에 빠지면 신의(神醫)화타의 처방전도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광대무변의 역학을 천착하면 할수록 역림의 깊은 숲속으로 빨려 들어가니 불가사이한 일이다. 주역해석에는 춘추전국시대 이래 청대까지 간행된 수많은 전적(典籍)들의 내용이 괘효사 해석에 인용되고 있다. 본문에 곁들인 보해(補解)는 주(註)를 달아 괘 해석의 거증으로 삼는다. 주(註)는 괘효사 해석에 매우 긴요한 참고자료로 빠짐없이 병독(竝讀)해야 한다. 주역본서 백여 권 외 수백 종의 역과 관련된 서지(書誌)를 섭렵하지 않으면 난해한 주역해석은 불가능에 가깝다.

주역은 편저자마다 해석방법이 구구각색이라 기준잡기가 어렵다. 예를 들면 통행본은 이전역경(以傳易經: 공자의 십익으로 해석), 고증학파, 금문학파, 고사변파, 고사학파는 이사역경(以史經經: 은허의 출토금문과 은말 주초의 역사적 사건에 근거해 해석)과 이경역경(以經易經: 역경의 괘사효사를 의리적 괘의로만 해석)식이다. 그리고 의리학파와 상수학파의 견해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에 해석방법도 다르다. 그래서 주역비평가들은 주역해석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혹평한다. 주역공부에서 괘효사에 사용한 난해한 한문은 한글세대에겐 철벽같이 느껴진다.

한자해석은 이아주소, 설문해자, 단옥재주, 경전석사, 경희자전 등을 참고해 괘효사에 사용한 한자의 생성원리를 알아야 한다. 특히 주역하경(34경)은 인간사에 관한 괘효사이기 때문에 어려운 한자나 한문이 많다. 단순히 한자만 알아서도 안 되고 한문과 괘효사에 사용된 문사(文詞)의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까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주역철학사에서 언급한 선진시대부터 명.청대 까지 출간된 전적을 총망라한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를 참고해야 한다.

<사고전서총목제요>는 청나라 건륭제의 칙령으로 이윤(己 ) 등이 편찬한 200권 분량의 방대한 전적으로 1만여 권의 중국한적을 수록해 놓았다. 이 때 기윤은 별도로 20권 분량의<사고전서간명목록>을 발간했다. 실제 간명목록분량은 총목의 1/10에 불과하지만 작은 활자체로 편집해 총목내용의 80%정도로 축약해서 각 서적의 이름 밑에 그 대요를 간략하게 기록해 놓았다. <사고전서간명목록>은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필자도 한질(4권)구입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주역공부에 부수되는 관련 전적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상수역을 이해하기위해서는 명리(사주)공부를 통해서 오행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10간12지(干支)의 오행을 모르면 선천역(복희역)과 후천역(문왕역)에 부기된 오행의 수를 몰라 주역으로 서(筮)할 수 없다. 명리는 주역보다 몇 배 더 난삽하다. 이허중이 개창한 명리학은 연해자평, 자평진전, 궁통보감, 적천수, 명리약언, 명리정종, 삼명통회, 오행대의 정도는 통독해야 한다. 원전번역서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명리는 가장 실용적인 술수로 일반인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주역공부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학습과제이다.

주역의 실제 활용인 역점은 수십 가지이기 때문에 서법과 해석법도 가지각색이다. 어렵기로 소문난 육효와 육임, 기문은 물론, 소강절선생의 매화역수, 하락이수, 황극경세, 초연수의 초씨역림까지 통섭해야 주역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다. 시중에 나온 주역서 3~4권 읽고 주역가연 했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조선의 날고 긴다는 대유학자들이 주역공부에 평생을 바치고도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유학에 도통한 성인 공자가 왜 오십이학역(五十而學易)하여 책 자루에 역서를 넣고 다니며 위편삼절(韋編三絶)했는지 그 깊은 뜻을 헤아려 봐야 한다. 역의 세계는 광대무변하다. 점서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과학적인 구성기학, 별자리로 점단하는 동양의 점성술인 자미두수, 손금으로 운명을 점단하는 수상학, 사람의 얼굴 생김새로 운명을 점단하는 관상학, 한의학의 정수인 사상의학, 사주팔자와 운명을 같이 하는 성명학, 중국3천년의 한의비전인 황제내경, 천부경, 음부경 천문류초등 동양천문사상사와 조선3대 예언비서(秘書)인 정감록, 격암유록, 송하비결을 섭렵한 후 정역(正易)까지 터득해야 한다.

그밖에 술수의 진격으로 스님의 필독서인 <백초귀장술(百超歸藏術)>과 기왕지사 서양의 점성술과 타로까지 통달해야 하니 끝이 없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도정(道程)이 바로 역학공부임을 비로소 실감한다. 그러나 수천 수백 년의 지난 역사 속에서 역통(易通)에 매진한 역학 선지자들의 피나는 역정을 생각하면 필자가 지금 겪고 있는 학역(學易)산통은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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