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20:38 (일)
건강 장수와 병든 장수
건강 장수와 병든 장수
  • 경남매일
  • 승인 2024.03.1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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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이 82.7세(여 85.7세, 남 79.9세)로 길어졌다. 노인대국 일본과 스위스 등에 이어 기대수명이 긴 나라에 속한다. 경제성장과 함께 의료기술의 발전, 위생적인 생활, 고른 영양섭취로 오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대수명의 연장에 비해 건강수명은 64.4세에 그쳐 명실상부한 건강장수와는 거리가 멀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80세 이상 노인의 95%가 만성질환자로 고혈압, 골관절 류머티즘, 고지혈증, 요통, 좌골신경통, 당뇨,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노인의 21.1%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월 평균 2.4회 병원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노인의 의료비 지출은 2023년 평균 1인당 516만 원이었으나 2030년이 되면 760만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작년 진료비 총액은 이미 100조를 넘었다. 그 중 노인진료비비중은 노인인구(19%)대비 43%를 차지해 건보재정의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진료에 따른 가족의 진료비 부담압박 역시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가계부채의 증가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증거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병든 장수는 장수가 아니라 수명만 유지하는 불행한 삶이다. 오늘도 요양병원을 가득 매운 노인 환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디스카운트 하며 억지연명의 장수를 누리고 있다.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쳐 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한다. 태어나고 성장해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오래 산 것을 축하하는 회갑잔치와 칠순잔치는 고릿적 애기다. 요즘 회갑잔치는 물론 칠순잔치조차 생일날 가까운 가족끼리 모여 조촐하게 지낸다. 그것도 자식들과 형제간의 우애가 좋은 집안 얘기다. 제 부모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생사조차 모르는 패륜이 판치는 세상엔 장수가 결코 축복이 될 수는 없다.

정부에서는 보편적 복지시대를 맞아 각종 노인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노인대국으로 가는 초 고령사회(20.6%)를 맞아 노인복지정책의 전면적인 개편이 절실한 시점이다. 물론 정부 나름대로 노인복지정책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나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외면 받는 소외계층은 늘 존재해 왔다. 이들에 대한 소극적 임시방편보다 한층 근본적인 복지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

이는 바로 기대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건강수명의 연장으로 정책방향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예로 우리보다 먼저 노인대국이 된 일본의 재가노인 돌봄서비스제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에서도 이런 제도를 부분적으로 벤치마킹해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질적인 제도화의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한국도 2018년 어르신들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거·건강·의료·요양·돌봄 서비스 등을 통합해 제공하는 '지역사회통합돌봄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노인 환자에 대한 재가돌봄서비스의 미비로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일본처럼 방문간호서비스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노인의 재가돌봄서비스는 겉돌고 있다. 방문간호센터를 통해 재가돌봄서비스를 더욱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필자는 작은 낙상사고를 당했다. 3·1절 공휴일로 병의원들이 모두 휴진이라 통증클리닉 한 곳을 겨우 수소문해 응급진료를 받았다. 큰 사고가 아니라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을 찾을 개재는 못 되었다. 인구 백만의 특례시가 이럴진대 소도시나 농촌은 오죽하겠는가.

지금 한국의료체계를 마비시키고 있는 전공의 집단사퇴를 보면서 우리나라 의료관리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시급함을 절감한다. 이번 사태발생에 대해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정부나 의협이 과연 국민건강을 최우선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여야정치권은 4월 10일 총선승리에 목을 매단 채 당면 의료사태해결을 위한 초당적 중재노력은 1도 없어 보인다. 정부와 의협의 원만한 타협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라도 발표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표를 의식해 국민건강마저 외면하는 정치권에 뭘 기대하겠는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회의원은 유명무실 그 자체이다.

더불어 엘리트라 자칭하는 한국의 인텔리겐치아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외면한 채 오직 제 밥그릇 챙긴다고 대동단결(?)하는 모습에 실망을 넘어 절망감을 느낀다. 걸핏하면 시건방 떨며 일본을 무시하는데, 정부와 의료계는 그들이 지금 노인케어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겸손한 자세로 살펴봐야 한다. 이제 일본은 방문간호를 넘어 임종간호까지 서두르면서 다시샤카이(多死社會)에 대한 대비가 한창이다. 건강장수가 아닌 병든 장수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생명 연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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