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4:41 (토)
어느 노부인 이야기
어느 노부인 이야기
  • 경남매일
  • 승인 2024.03.1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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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비즈니스 목적으로 요양병원에 들른 적이 있다. 요양병원 입구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 다소 거동이 어설픈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얼굴에는 생기가 없고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무표정이다. 인생의 끄트머리에 거쳐 갈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에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인생의 시작점이 다르고 종착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과 종착점 사이의 인생 역에서 의미로 채우는 과정은 아름다워야 한다. 요양병원에서 삶의 끝을 맞는 인생은 결코 무의미할 수 없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여러 사람과의 아름다운 만남의 길이기 때문이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 설교 말씀이 떠올랐다. 미국 택시기사의 이야기다. 택시기사가 전화를 받고 손님을 태우러 갔는데 도착한 곳은 도심 변두리의 허름한 집 앞이었다. 미국 영화의 한 편처럼 원피스에 베일이 드리워진 모자를 쓴 노부인이 입구에 서 있었다.

가야 할 주소를 건네준 노부인은 시내를 통과해서 가자고 한다,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목적지인데 시내를 둘러서 가면 1시간 이상 걸린다고 하니 마지막 가는 길이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노부인은 두 시간 정도 시내 곳곳을 돌아 처녀 시절 엘리베이터 걸을 할 때의 빌딩 문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결혼을 해서 신혼살림을 하던 주택가였다. 가구 전시장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보면서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소녀 시절 드나들었던 무도회장 앞에서도 멈췄다. 초등학교 근처에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주변 건물이나 사거리 한편에 차를 세우게 하고서 시내 곳곳 이곳저곳에서 말없이 앉아 있기도 하고 바라보고 서 있기도 하였다.

"이젠 가도 되겠어요"해서 다시 출발해서 도착한 곳은 작고 초라한 요양병원이었다. "요금이 얼마냐"고 묻자 운전사는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노부인의 짐을 덜어 주었다. 서로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운전사는 노부인을 꼭 껴안아 주었다. 이 늙은이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인생의 마지막에 가질 수 있게 해주어서 내게는 기대하지 않은 축복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꼭 크지 않아도, 그것이 물질이 아니어도, 작은 마음 씀씀이 하나로 주변 누군가에게 행복을 선물할 수도 있다. 건물에서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뒤따라 오는 사람이 있다면 문고리를 잡아주고, 운전 중 앞서가는 보행자가 길을 비켜주지 않아도 경적을 누르기보다 알아차릴 때까지 뒤따라 가고, 끼어들기 하려는 차량을 위해 공간을 띄어 주고…. 이렇게 일상에서도 미소짓게 하는 작은 배려는 얼마든지 있다.

배려는 행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이 움트는 비타민 창고와 같다. 서글플 수 있었던 노부인의 마지막 가는 길이 그 운전기사로 인해 축복의 시간이 되었다. 세상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로 인해 참 풍요롭다.

비록 미미한 나의 작은 베풂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비타민 같은 역할이 된다면 이 또한 축복을 쌓는 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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